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서울에 사는 해원이 한 여성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사건 현장을 모두 목격했음에도 귀찮아서, 아니면 본인에게 어떠한 해가 있을지 몰라서 그냥 모른척, 못본척 하며 넘어가는 일들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복남이 살고 있는 무도는 해원이 살고 있는 그곳보다 훨씬 극적이다. 진실은 덮어지고, 묻혀진다. 복남이 겪는 부당한 현실을 보고 있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정작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불친절한 사람들에게 복남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가부장제도 아래에 억압받던 복남

 

 

복남은 작은 섬인 무도에서 태어나 계속 자란다. 어릴 때 부터 지금까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아왔으며 이는 성인이 되고 한 아이의 엄마인 지금까지도 쭉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변할 기미가 안보인다. 할머니들의 '이래서 남자가 필요하다'는 말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복남 역시도 그런 가부장제도가 부당하다고는 느끼지만, 그래서 서울로, 그리고 해원으로 표상되는 그 자유를 동경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수용한다. '아이에게는 그래도 아빠가 필요하지'라면서.

 

복남이 그런 억압된 모습을 참고 견뎌냈던 이유는 어떻게 보면 모두 자신의 딸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남편이 딸과 그런 관계를 갖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복남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딸과 함께 무도를 탈출하려고 마음먹은 복남은 해원에게 부탁하지만, 해원은 거절한다. 결국 본인이 스스로 섬에서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지만 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곧 남편에게 잡히고 만다. 곧 이어진 실갱이 끝에 복남의 딸은 결국 죽고만다.

 

복남이 지금까지 참아왔던 단 하나의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복수의 시작

 

 

 

딸의 죽음 앞에서 복남은 경찰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리고 이를 목격했던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 해원마저 보지 못했다며 모두 거짓말을 하고 결국 없던 일 처럼 넘어가게 된다. 자신의 무기력함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복남은 집 안에 딸의 무덤을 만들지만 돌아오는건 남편의 어깃장 뿐이다. '재수없게 왜 집안에 무덤을 놓느냐'면서. 시부모란 사람은 일이나 하라며 말하고. 참고있던 복남은 이제 더이상 참을수가 없다. 밭에서 태양을 맨눈으로 바라보던 복남은 결심한다. 모두 죽여버리기로.

 

하나둘씩 죽어나가고. 복남은 해원도 죽이려고 뭍에까지 왔지만 끝내는 죽이지 못한다. 그러면서, 복남과 해원의 우정의 징표인 리코더를 마지막으로 불게되고 복남의 복수는 그곳에서 막을 내리게 된다.

 

남편의 폭력, 그 너머의 메세지

 

 

혹자들은 페미니즘 영화네 뭐네 하면서 이 영화를 평가한다. 물론 그도 그럴것이, 주인공 김복남이 살인사건을 저지르게 된 계기는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살아온 복남이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했고, 남편에게 폭행을 받으면서도 저항하지 못한 모습들이 보여졌기 때문일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복수를 해 나가는 모습은 여성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수도 있을것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세지는 그 너머에 있다. 첫 장면에서 폭행당하는 여성을 못본채 하고 넘어갔던 해원의 모습과, 이러한 일을 겪고 난 후 다시 그 폭행 사건의 목격자로 경찰서를 찾은 모습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것이며 나아가 '방관자'적인 태도를 경고하려는 것이다.

 

 

방관자는 곧 가해자이다.

 

 

수 많은 일이 하루에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방관자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하려다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취한 그러한 태도로 인해 타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릴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언제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되어 나 역시도 다른 방관자들로 인해 도움을 받지 못할 것 이라는 현실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내가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복남의 입장에 선다면, 나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방관한 사람들, 해원처럼 행동한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복남이 해원에게도 복수하려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방관자 역시도 다른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가해자이다. 성질이 다를 뿐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불친절한 사람들

 

 

진실을 외면하는 불친절한 자들 속에서만 살았던 복남은, 자신이 뭍으로 나오며 준 배삯의 일부를 떼어 본인에게 돌려주자 그에게 말한다. '나한테 왜 이러는데요?'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친절한 사람도 다 있네' 그리고 파출소로 들어가 해원을 만나자, 이렇게 이야기 한다. '넌 너무 불친절해'

 

우리는 어떤가? 부당하고 억울한 진실을 봤을 때 나의 일처럼 나서는 친절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목도하고만 있는 불친절한 사람인가? 복남이는 해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해원은 불친절하게도 복남의 도움을 거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그 후회를, 폭행 당한 여성의 목격자로 스스로가 나서는 모습으로 보여줬다. 나의 진실을, 그 친절함을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주저하지 말자. 너무 늦어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