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행한 문화 코드를 살펴보면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것 같다. 하나는 첫사랑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복고이다. 지금이야 늑대소년이 그 기록을 갈아치워버려 희미해졌지만, 역대 멜로 영화 흥행 순위 2위에 빛나는 건축학 개론으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시대적으로 복고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드라마에 클리셰가 넘치는, 옛날의 그것들과 비슷한 드라마 역시 올해에 많이 방영되었고, 큰 성공을 거뒀다. KBS의 착한 남자나 MBC의 메이퀸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적으로도 그 옛날의 시대를 보여주고 있으면서 첫사랑을 다루면서 흥행한 드라마로는 '응답하라 1997'이 있다. 평균 시청률은 3%~4%대에 그쳤으나 마지막회의 6%의 시청률과, 케이블이라는 플랫폼의 한계를 고려한다면 대단한 수치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처음부터 큰 조명을 받고 시작한 '무자식이 상팔자'가 현재 5%대의 시청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더욱 가치있는 수치가 된다. 배우 캐스팅 과정에서부터 삐걱대고, 결국은 아이돌을 전면에 내세우냐며 많은 손가락질도 받았지만 말이다.

 

형제관계의 삼각관계, 진부하지만...

 

 

드라마의 내용은 사실 조금 진부하다. 복고풍의 드라마라 그런지 스토리조차 복고다. 물론 당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것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였다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던 모든 시청자들이 가장 중요하고, 그리고 궁금하게 생각했던 점은 '시원은 누구와 결혼했는가?'였다는 것을 상기시켜 본다면, 결국 이 드라마의 메인 토픽이 형제가 한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다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실 형제관계에서 여자를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내용의 드라마는 지금까지 수도없이 많이 나왔다. 그만큼 익숙한 코드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그만큼 질릴수도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이를 숨기거나, 티나지 않게끔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려는 모습들을 요근래의 드라마에서는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응답하라 1997은 대놓고 드러냈다. 각 회의 마지막마다 '대체 누가 시원의 남편인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정통으로 치고 들어간 부분이 거북스럽게 느껴질수도 있고 식상하다라며 손가락질 할 수도 있지만, 그런말을 하면서도 대체 누군지 궁금해 하는 점이 진부한 삼각관계를 흥미롭게 풀어간 응답하라 1997의 장점이다. 당연히 윤재와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그렇다고 확신할수 조차 없었던 것도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예상하던 결말로 끝이 나버렸지만.

 

90년대, 그리고 지금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해도 정은지가 맡은 성시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이끌어 가는 핵심 플롯은 당대의 아이돌 문화이고, 그 중심에 주인공인 성시원이 있다. HOT, 젝스키스등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아이돌 문화는 그 당시의 문화를 향유했던, 그리고 당시를 추억하고 있는 세대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응답하라 1997의 인기를 견인했던 세대는 꼭 그때의 세대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지금 아이돌 문화를 소비하는 10대 역시도 응답하라 1997의 인기에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것은,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아이돌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90년대의 문화와 오늘날의 문화는 '아이돌'이라는 모습에서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90년대의 시원과 2005년의 대학 조교들은 그때의 HOT가 지금의 동방신기로 대상만 변했을 뿐 그 속성은 같다.

 

그리고 극중 주인공이 학생이라는 점도 유효했다. 당시의 학생이나 오늘의 학생이나, 사실상 별반 다를바가 없다. 아이돌 문화를 함께 공유했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그 밖의 것들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진로와 남녀관계에 고민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낮은 성적으로 인해 부모님께 구박받는 시원의 모습이나, 시원에게 첫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윤재의 모습은 오늘날의 10대 역시도 함게 고민하고 있는 점이다. 덕분에 지금의 10대에게도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세밀하게 묘사된 90년대

 

 

또 다른 장점은 바로 그 시대를 디테일하게 잘 표현했다는 점이다. 사실 드라마의 내용은 차치하고, 응답하라 1997이 입소문을 타게 된데에는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때에 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90년대 후반의 가수들의 음악이 수시로 드라마에 깔리고, 무선호출기나 PC통신등은, 그때를 화면안에 그렸다는 표현보다는 이곳으로 '소환'했다는 표현이 외려 어울릴 정도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7은 단순히 그때의 단편적인 문화들을 소환하는데에 그치지 않았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캐릭터 역시도 그때의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놨다. 그것들을 보면서 '그땐 그랬지'라며 추억에 빠지면서, 당시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는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그러면서 공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극속의 주인공들이 동창회에서 자신들의 90년대 모습을 그리면서 위로받았듯이, 드라마를 보는 우리 역시도 그들의 90년대를 엿보고, 그 속에 우리의 그 시절을 투사하며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열정은 차가움으로, 순수함은 때묻음으로...

 

 

마지막회에서 드라마는 윤재의 입을 빌려 드라마의 중요한 내용을 전달한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시는 그 젊고 순수한 열정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정의 입을 빌려서도 이야기 한다. '첫사랑이 중요한게 아니라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중요한거지'라면서. 드라마를 빌려 아름다운 그때를 추억할수는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지금 현재에 살아가고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마지막 말처럼, 지금의 우리는 현실에 살고있고, 그리하야 '열정은 차가움으로, 순수함은 때묻음으로, 젊음은 영악함으로' 나이들어 가거나, 나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졸업앨범속 사진처럼 그 때의 시절은 빛은 바랠지언정, 사라지지는 않고, 우리 한편에 남아 있기 때문에, 노곤한 일상에 지칠때면 언제든지 꺼내어 보곤 하며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속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