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됐네. 좋은 이야기는 낡은 트럼펫보다 더 가치가 있지'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나인틴 헌드레드의 이야기를 듣게 된 악기점 주인의 말이다. 오늘 다루려고 하는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은 그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이다. 평생을 배 위에서 보내고, 그 위에서 무한한 그의 음악을 만들어 나갔던 한 피아니스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라는 영화를 접한것은 훨씬 전에 친구를 통해 알게됬지만 선뜻 보려고 하지는 못했다. 결정적으로 보게된것은 이 영화를 보게된데에는 주연 배우가 팀 로스이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팀 로스가 주연으로 출연하던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그가 이 영화에서 주연배우라는 사실을 알게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접하게된 이 영화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절친한 친구였던 트럼펫 연주자인 맥스의 입을 빌려 시작된다. 버지니아 호에 탑승하여 그를 처음 만나고, 그의 음악에 감동하고, 그가 겪은 모든 일들을 주변에서 가장 가깝게 지켜본 그를 통해서 나인틴 헌드레드의 모든 이야기가 생생하게 흘러 나온다.

 

시작과 끝을 바다위에서 보내다

 

 

그의 삶은 배 위에서 시작되었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버지니아 호'에서 일하는 데니에게 발견되고, 그는 데니의 아래에서 크게된다. 석탄실의 동료들은 그에게 '무슨 아이냐'며 면박도 줬지만 그는 아이를 기르기로 결심하고 그에게 '데니 부드맨 T.D 레몬 나인틴 헌드레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나인틴 헌드레드는 배 위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인 데니를 사고로 잃은 후, 선장이 그를 고아원에 보내려 하나 찾기 못해 시기를 놓치고, 그냥 배 위에서 계속 살게끔 해준다. 선상에서 만난 그의 친구 맥스는 '뭍으로 나가보라'며 권유하지만 그는 나가지 않는다.

 

수십년이 지나고 2차세계대전도 끝난 어느 날 맥스는 나인틴 헌드레드가 전쟁기간동안 병원선으로 쓰이고 이제는 폭파만을 기다리고 있는 버지니아 호에 있을거라는 확신을 갖고 그에게 찾아간다. 맥스는 그를 밖으로 꺼내려고 했지만 나인틴 헌드레드는 이를 거절하고 배에서의 죽음을 택한다. 바다 위에서 태어난 그가, 배 위에서 태어난 그가 마지막 역시도 그곳에서 보내기로 한 것이다.

 

피아노에 대한 그의 천부적인 재능

 

 

선장이 나인틴 헌드레드를 고아원으로 보내려는 모습은 사실 일반 극장판에는 나오지 않고 감독판에 잠깐 나오면서 지나간다. 선장을 피해서 나인틴 헌드레드는 26일이라는 시간동안 숨어지내고, 버지니아 호가 다시 출항을 하던 도중에 선장에게 발각되는데, 그런 그는 발각될때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단 한번도 배운적 없는 피아노를,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승객들이 그 음악에 매료되어 듣고 있던 덕분에 들키고만것이다. 선장은 그에게 '규정 위반이다!'라고 하지만 나인틴 헌드레드는 '그놈의 규정!'하면서 맞받아치고, 선장은 그를 버지니아 호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한번도 배우지 않은 피아노를 모든 청중들이 홀릴만큼 치는 그의 모습에서는 피아노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놀라운 실력은 여러곳으로 퍼져 재즈의 창시자라 불리우는 제리 롤과의 피아도 대결도 이뤄진다. 대결에 임하면서 나인틴 헌드레드는 음악으로 대결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음악에 심취하지만 그런 태도를 인정하지 않는 제리 롤의 태도에 정면으로 대결, 가뿐하게 승리한다. 음악이 삶의 도구가 아닌 삶의 전부인 그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태도일 수도 있다.

 

그런 그가 연주한 가장 최고의 음악은, 제리 롤과의 승부 후 레코딩을 하러 찾아왔을때다. 그는 자신의 앨범을 내기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는데, 문 너머로 한눈에 반하게 되는 여성을 보게 되고, 그를 보며 연주한 그의 음악은 그가 가장 아끼는 음악 중 하나로 된다. 버지니아 호의 마지막과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할 때 그가 허공에서 연주했던 음악이 그것이라는 점은 이를 잘 시사해주고 있다.

 

뭍으로 나가려는 나인틴 헌드레드, 하지만

 

 

그는 레코딩한 음반을 그들에게 뺏으며 '내가 없는 음악은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며 레코딩을 거부한다. 그리고는 그 음반을 포장하여 소녀에게 전달해주려 한다. 사실 자신이 없는 음악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 나인틴 헌드레드는 음악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그런 그가 소녀에게 앨범을 전해준다는 것은, 즉 음악을 전달해준다는 의미는 곧 본인의 마음을 그 소녀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가 있지만 나인틴 헌드레드는 그 소녀에게 자신의 앨범을 끝내는 전달해주지 못한다.

 

그리고는 그 소녀를 만나고자 하는 마음에 배에서 내리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친구인 맥스에게 '이번에는 배에게 내릴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까지. 그의 삶 전체를 흔드는 사람을 만나, 뭍으로 가기로 결심하지만, 문턱에서 그는 또 마음을 바꾸고 이내 배로 돌아간다. 솟아있는 도시의 건물들을 바라본채, 자신의 모자를 바다로 던진채.

 

물론 나인틴 헌드레드가 뭍으로 나가려는 것이 비단 소녀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그는 소녀의 아버지를 배에서 만나게 되고, 그에게 이런 말을 전해 듣는다. 언덕에 올라, 바다를 보자, 바다가 나에게 '인생은 무한하다!'라고 소리치는,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 소리는 육지에서만 들을 수 있다고. 아마 그 소녀를 만남으로써 그때의 이야기가 생각났고, 인생이 무한하다고 말하는 그 바다의 소리를 듣고자 육지에 가려고 했던 것일수도 있겠다.

 

유한한 선상위의 공간, 하지만 무한한 그의 인생

 

 

그는 버지니아 호와 자신의 삶을 마감하려 할 때 맥스를 만난다. 밖으로 나가자고 말하는 맥스에게 그는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육지에서 어떻게 하나의 삶을 선택하여 살 수 있냐며 되묻는다. 그리고는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미국을 향해 떠나면서, 그들에게는 적어도 희망이 있었다고 말한다.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고 하면서. 그러면서 자신은 육지를 동경했다고도 이야기 한다. 너무 아름다운 여자이고, 절대로 만들지 못할 음악이였다고.

 

그는 배에서 태어났고, 배에서 자랐다.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세상은 아마 배 위, 선상이 끝일 수 있다. 마치 피아노의 건반이 88개로 정해져 있는것처럼 말이다. 그런 그가 육지로 나가려 했을때, 끝 없는 세상을 보고서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공포심은 누구나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모습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 그 한정되고 좁은 공간인 배 위에서 이제는 내려올법도 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세상은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공포심을 가져야 할 곳이 아니라고.

 

하지만 여든 여덟개의 건반처럼 한정되 있는 배 위에서 쭉 살아온 그지만, 바다가 이야기 해 주는 것처럼 그의 인생은 무한하다. 마치 한정된 건반으로 무한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가 보는 그의 세계는 좁고, 답답해 보일 지라도 그에게는 무한한 공간이였고, 무한한 인생이였다. 비록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폭발로 수장되겠지만 말이다. 그런 소중한 곳에서 평생을 자라난 나인틴 헌드레드가, 그 곳과 자신의 인생을 함께 하기로 한 마지막 결정도 꼭 이해하지 못할것만은 아니다.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피아노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