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달려왔던 드라마의 제왕도 어느덧 다음 주를 마지막회로 앞두고 있다. 드라마 제작현장을 여실하게 보여주겠다든 초기의 기획 의도는 드라마의 중반정도까지는 흘러갔으나 어느새 부턴가 김명민(앤서니役)과 정려원(이고은役)간의 로맨스가 드라마의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양새이다.

 

이로 인해 초기의 드라마의 제왕의 모습을 원하며 봐왔던 시청자들은 아마도 다른 곳으로 떠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논란을 겪었던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재규 감독은 '사람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느냐'라며 반박한 것을 상기시켜보면, 드라마도 결국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처음의 앤서니는 '드라마는 곧 돈이다', '사랑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버릴 수 있느냐'라며 이고은을 몰아붙였지만, 경성의 아침의 김우진처럼 그런 사랑의 감정을 이고은으로부터 느끼기 시작한 뒤 그는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버린 김우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드라마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 자체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태산그룹과의 파트너 계약을 앞두고 이고은을 살리기 위해 그곳에 온전히 모든 것을 걸었던 앤서니의 모습은 이를 더 자세하게 보여준다. 힘과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드라마가 아닌, 인간애가 넘치는 드라마가 진정한 드라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 끝에서 이고은과의 사랑도 찾게 된 것이었다.

 

재계약을 핑계 삼아 그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자 하려했던 그들이지만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앤서니가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실명위기의 앤서니, 결국 남는 건 음지의 방식으로 판치는 사람들 뿐

 

 

지금까지 앤서니는 드라마를 단지 돈으로만 보아왔고 그렇게 제작해왔다. 하지만 앤서니의 마음속에 있는 '드라마 제작'에 대한 신념은 자신의 어릴 적 모습에서 잘 나타나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 아래에서 힘겹게 자란 앤서니이기 때문에 돈에 대한 열망도 있었지만, 어릴 적 그가 보던 드라마는 돈이 아닌 힘든 자신에게 위로를 주는 도구였다. 이고은이 앤서니에게 '당신에게 드라마는 무엇이냐'라고 묻자 앤서니가 회상하는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처음으로 드라마에 발을 딛게 된, 어릴 적에 드라마를 보던 이유, 바로 그 처음의 마음가짐을 다시 찾게 해준 사람이 바로 이고은이다. 실명을 하게 된 그가 찾아간 교회에서 그는 십자가 앞에서 고백을 하게 되는데, 그 때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제야 내가 왜 드라마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았고, 그 이유를 알려준 사람도 만났습니다. 근데 왜 그런 나를 선택한 겁니까?'

 

물론 앤서니가 실명을 당하지 않았다면 교회에 찾아갈 일도 없었을 테고, 그가 느끼는 드라마에 대한 진실한 감정을 우리가 엿보지 못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이제야 드라마의 진정한 의미를 찾음과 동시에 삶의 의미를 함께 구해낸 그에게 실명이라는 대가는 사실 가혹하다. 더불어 시청자들에게 그러한 의미를 전하고, 그 의미에 무게를 더해주고자 실명이라는 방법을 사용했겠으나 진정한 정의가 실현됐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는 앤서니가 예전에 했던 말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경멸하는 그런 어두운 방식으로 국장직에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표를 낸 남국장에게 앤서니는 '떠나시기 전에 이것만 알아두십쇼. 그렇게 되면 결국 남는 건 음지의 방식들로 판치는 더러운 인간들뿐이라는 걸' 앤서니 역시도 이제야 '진정한 의미의 드라마 제작자'로 거듭났지만 결국은 그 드라마 판을 떠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

 

모든 짐을 스스로 지려고 하지만

 

 

결국 앞을 보지 못 하게 될 앤서니는 하나씩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눈이 멀고 난 후의 생을 준비하기 위해 시각장애인 복지시설도 찾아보고, 점자도 공부하는 등 스스로를 위한 준비도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위해서 그가 준비해나가는 모습이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이 그런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숨긴 채 자신의 주변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거느리던 부하직원들과, 드라마 제작 현장, 그리고 이고은까지.

 

뒤에서 그들이 보지 못하도록 주변 정리를 해나가던 앤서니는 스스로가 모든 짐을 지려고만 한다. 직원들의 이력서를 돌리며 많은 제작사에 추천을 하면서도 자신은 그들에게 '태산그룹에서 파트너제안을 해왔는데 그쪽에서 직원들은 두고오라고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모두들 작품끝나는대로 새 직장 알아봐'라며 자신이 처한 위기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만 한다. 스스로의 감정을 겉으로 절대 드려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어디서든지 태연한 척 하는 그의 모습은 그들이 자신을 위해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나를 걱정하며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앤서니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면, 현재의 앤서니가 정말로 인간적인 제작자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앤서니는 겉으로는 자신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고은에게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빠져'라며 '네가 뭘 해줄 수 있는데'라며 스스로의 감정에 갑옷을 씌운 채, 그저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며 말한다. 하지만 앤서니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에 '이고은 잊기'라고 써놓은 사실로 미뤄볼 때, '나로 인해 힘들어할 그들이 걱정돼서'라는 부분이 더 맞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앤서니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되겠지만

 

 

앤서니의 인생은 화려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불행하며 비극적인 인생이다. 김봉달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던 지난 어린 시절, 앞 못 보는 어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라며 돈에 대한 열망을 키워왔고, 그리하여 그의 그 열망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마 제작사라는 제국 프로덕션의 대표직에도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의 과한 열정이 결국은 다시 나락으로 그를 떨어트렸고,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렇게 절망의 끝에서 만난 경성의 아침이라는 작품은 또 제작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하지만 그는 이 드라마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고, 드라마 제작의 의미를 다시 찾게 된다. 새로운 삶을 만났고, 새로운 투자처를 찾았고, 자신에게 새로운 의미를, 예전에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렸던 의미들을 되찾게 해준 한 여성까지 만났지만 결국 그는 실명이라는 결말에 다다른다.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회의 예고에서 작가는 이고은을 통해 '단 1%의 희망이라도 있다는 게 어디에요. 기적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라고. 그 기적 꼭 만들어서 와요'라며 앤서니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놓지만 동시에 경성의 아침 마지막 테이프를 넘기기 위해 오토바이로 이동하던 중 앤서니가 사고가 났다고도 전한다. 어찌되었든 간에 앤서니가 시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런 앤서니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 4주 남짓 남은 그의 시간, 그의 1분 1초는 무엇보다 소중할 것이다. 그가 해야 할 일 중에서 '경성의 아침 드라마 완주'라는 것 역시도 어머님 다음으로 가장 소중하며 중요한 일이다. '부끄럽지 않은 1분 1초가 지금 이 순간에 우리를 기억할 수 있게 할 거야' 라는 앤서니의 말처럼, 그리고 쪽잠을 자고 쪽대본을 써가며 삼류 같은 인생을 버텨야 하는 그와 이고은, 그리고 모두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억될 수 있는 마지막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