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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떠나간 그는 점점 잊혀지겠지만, 영화 '데이비드 게일'

by 카쿠覺 2013. 1. 4.

 

살다보면 억울하게 누명을 쓰든 경우도 있고, 기대치 않은 오해로 인해 사람과의 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영화 '데이비드 게일'의 주인공인 케빈 스페이시(데이비드 게일役)역시도 마찬가지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낄법한 그런 수준의 오해와 누명은 아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데이비드 게일이 자신의 수업을 듣던 한 여학생과 맺은 관계로 인해 강간범으로 오해를 받은 일로부터 시작된다. 강간범이라는 오해는 살면서 겪거나 들어볼법한 오해의 크기는 아니다.

 

그 후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함께 했던 가장 친한 친구인 로라 린니(콘스탄스役)의 강간살해범으로 지목받고, 열렬한 사형제 폐지론자였던 그는 끝내 사형 집행을 나흘앞으로 남겨놓게 된다. 그리고선 자신의 진실을 들어줄 한명의 기자, 케이트 윈슬렛(빗시役)을 부르게 된다.

 

* 아래로는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데이비드 게일은 진정한 사형제 폐지론자 였을까?

 

 

사형제가 폐지 되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사실 끝나지 않은 논쟁이다. 흔한 예로 미국에서도 사형에 대한 논쟁은 뜨거워서, 약 15개 남짓 되는 주에서는 사형제를 사실상 폐지했거나 집행하지 않고 있지만 그 외의 주에서는 사형제를 선고 또는 집행하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소재 역시도 '사형제의 존재/폐지 여부'이다.

 

영화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지사로 대표되는 사형제 찬성쪽과 그리고 데이비드 게일과 콘스탄스로 대변되는 사형제 폐지쪽이다. 앞서 언급했던바대로 데이비드 게일과 콘스탄스는 사형제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폐지론자로써 사형제 반대 운동을 하는 '데스워치'의 회원이자, 중역을 맡고있다.

 

물론 데이비드 게일이 정말 순수하게 사형제의 폐지를 지지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주지사와의 논쟁에서 보다 차분히 대응하는 것이 좋겠다는 콘스탄스의 말을 들은 그이지만 결국 TV토론에 나가서는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를 본 콘스탄스는 그에게 '네가 잘난걸 증명하려 든 바람에'라며 그의 태도를 탓한다. 또, 극의 후반에 게일은 사형 집행을 앞둔 17살의 소녀의 사형 반대 운동을 하는 콘스탄스에게 '사형수의 생명도 존귀하다는 너의 생각은 그렇다 치더라도'라며 이야기 한다. 여러가지 상황들을 봤을때 그가 진정한 사형제 폐지론자라고 단언하긴 힘들다.

 

그 보다 먼저 데이비드 게일은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극에서 아들의 존재는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등장하는 빈도나 횟수로만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실 데이비드 게일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아니였다면 애초에 이 이야기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일의 모든 이야기가 밖으로 나오고 우리의 귀에 들어오게 된것은 빗시라는 기자를 만나 모두 털어놨기 때문인데, 그가 그녀를 부른 이유는 온전히 아들에게 아버지의 진실된 이야기를 전하려 했기 때문이다.

 

게일은 한 여학생의 모함으로 인해 결국은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아들과 끝이 없는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소는 취하되어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사형제 폐지를 외치며 강단에서 철학을 논하던 그에게 일단 한번 붙어버린 강간범이라는 수식어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이 떠난 후에도 아들이 남기고간 마지막 선물인 구름강아지 인형과, 아들이 아끼던 물고기를 계속 기를만큼 아들을 아끼던 그가 미래의 먼 훗날 아들에게 그저 단지 '강간범'으로만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로써의 그의 마음이 빗시와의 마지막 인터뷰를 갖게끔 한 것이다.

 

콘스탄스는 왜 그렇게 사형제 폐지에 열성인가?

 

 

진심으로 사형제 폐지를 위해 노력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들이 사형 집행을 막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것들은 수포로 돌아갔다. 단 한명의 생명도 살리지 못 한 것이다. 다만 앞서서 언급했듯이 데이비드 게일이 순수하게 사형제 폐지를 지지했다고 단언하기에는 힘든면이 있기때문에 그런 실패를 겪은 게일과 콘스탄스 두 사람의 반응은 서로간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그이지만 콘스탄스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된 게일은 '왜 그렇게 콘스탄스가 사형제 폐지에 집착했는지'를 이제야 깨닫게 된다.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거나 세상으로부터 백혈병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콘스탄스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들과 다를 이유는 없기에 그렇게 사형 집행을 막아보고자 열과 성을 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사형제 폐지를 위해서 결국은

 

 

그러나 결국 17세 소녀의 사형 집행을 막지 못한채 무기력감을 느끼게 된다. 극 중 초반에 나왔던 대로 '무혐의인데도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을 사형제 폐지의 논거로 들이댄다면 '그것이 바로 현재의 제도가 우수하다는 증거이다'라고 반박할 수 있기때문에, 확실한 논거를 위해서는 '무혐의임에도 사형선고를 받고 그 형이 집행되어 사망한 사람'이 그 근거로써 필요하다.

 

그런 중요한 한방이 없어서 실패한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도 알았을까. 결국 그들은 사형제 폐지라는 공동의 목표를 놓고 순교를 결정한다.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마지막에 자신이 사랑하던 칼라프 왕자를 위해 자살을 택하는 류의 모습은 사형제도의 폐지를 위해 순교를 택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모든 내용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연극이였다. 무의미하게 없어져가는 많은 사형수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두 사람이 희생한것이였다. 콘스탄스의 몸에서 게일의 정액이 검출되며, 온 몸에 수많은 멍들을 통해 게일이 강간살해의 범인으로 지목받고, 그로 인해 사형제 폐지를 열렬하게 주장했던 게일이 사형을 선고받고 죽게된다. 그 후 사실은 게일이 범인이 아니였다라고 한다면 사형제 폐지와 관련한 논쟁을 공론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해 빗시가 선택되어진 것이였다. 처음에 빗시는 그에게 '왜 하필 나를 선택했느냐'라고 물어보고, 게일은 빗시의 과거일을 토대로 정보원의 정보를 잘 지켜줄 것 같다는 신뢰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빗시라는 사람을 선택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을테지만, 하필 잡지사의 기자인 그녀를 선택한 것은 빗시 스스로가 말했듯 '자신이 사형을 막을만한 영향력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형제 폐지를 위해 순교를 선택한 이상 죽은 뒤에 그러한 증거들이 보여져야만 할테니 말이다.

 

떠나간 그는 점점 잊혀지겠지만

 

 

그는 결국 형 집행을 받고 죽게 되었다. 계획했던 대로 사건의 진실을 담은 테잎 역시도 그가 죽은 이후에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사형제 폐지를 사회적 이슈화시켜 공론화 만드는데에는 성공했다. 그리고 더이상은 강간범이라는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죽기전의 마지막 음식을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이플 시럽, 딸기, 생크림, 거기에 초콜릿 가루를 뿌린 팬케이크를 선택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 그가 그렇게나 아끼고 생각하던 아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게일의 생명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빗시를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 그녀에게는 '자유의 열쇠'인, 현장에 자신이 함께 있있다는 비디오 테잎까지 보낸다.

 

게일은 살아생전에 자신의 수업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이렇게 얘기한다. '자신의 인생을 욕망으로 달성한 것만으로 평가하지 말고 성실, 동정심, 합리성, 자기 희생의 순간으로 이룬 것들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이들의 삶을 통해서이니까.'

 

그는 극의 초반에, 빗시를 동행한 인턴 기자로부터 '27살에 하버드의 교수가 되고, 저서만 2권인 그는 학자로서 영웅이다'라고 평가받는다. 그런 평가는 게일이 생각하던 삶의 가치 측정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방법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자신의 생각이였던 '자기 희생의 순간에 이룬 것들로 삶을 평가해야 한다'는 말에 부합하고자 죽음을 택한것일수도 있다. 때문에 그의 죽음은 진정한 의미의 순교가 아닌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하나의 욕망에서 나온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희생을 통해 측정될 다른 이들의 삶, 즉 사형수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비단 그의 희생이 무의미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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