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줄창 외쳐대는 이야기는 한결같다. 성공하고 싶다면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라는 것. 그 어떤 자기계발서도 이 포맷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평소에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서적들을 본다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다'라며 한발짝 떨어져서 관망할수도 있을법 하지만, 심지어 그런 부류의 사람들 조차 자신의 태도를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꿔가야 하냐라며 고민한다. 긍정적 사고가 가져다 준다는 효과에 대한 생각은 그만큼 강력해서 깨지기 어렵다.

 

그런점으로 미뤄볼 때 이런 '긍정적 사고'에 대한 반기를 드는것은 사회적 도전이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누구도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것에 대한 의문을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지지할 사람도 없을테이니 심지어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기마저 하다. 그런데, 그 긍정적 사고의 이면을 보여주고자 펜을 든 사람이 있다. '긍정의 배신'의 저자인 바버라 에런라이크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긍정적 사고가 최고의 대안이다?

 

 

일반인들이 살아가면서 긍정적 사고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볼만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야겠다. 자신 스스로가 평소에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설령 의구심을 가진다고 한들, 당장 다가올 내일마저 불투명한, 최악의 상황에 처한 이들이 스스로를 비관적으로 여기고, 자포자기 할 바에는 차라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났지 않겠느냐라는 반론은 빈틈이 없는것 처럼 보이기 때문에, 외려 긍정적 사고의 필요성을 느낀 채 논쟁이 끝나기 십상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그런 반론을 반박하고자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이 유방암으로 투병한 이야기를 직접 전해주며 긍정적인 사고의 이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유방암은 왜 선진국에서 많이 발병하느냐, 효율적인 치료법은 왜 없느냐라는 식의 분노는 죄악시 되고, 오로지 긍정적인 사고만을 강요하는것은 이런 사고방식을 통해 유방암이 치료되기는 커녕 오히려 환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되어 치료 자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최악의 상황에서 항상 긍정적 사고가 도움이 된다고만은 할 수 없는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환자에게 긍정적 사고를 강요해서는 안되지만, 오늘날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간단하게 요악하자면 다음과 같다. 친척이던, 친구이던,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당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 유방암으로 힘들게 투병하다가 사망했다고 하자. 그러자 의사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환자가 사망한 이유는 긍정적으로 사고하지 못한 탓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없을것이다. 사실 납득이 되지도 않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는 이런식으로 우리를 그 틀속에 얽메이게 하고 있다.

 

당신의 잘못이니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라

 

 

이런 긍정적 사고는 기업 전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금융위기, 장기침체등으로 기업의 정리해고가 일상적인 일이 되어가면서 기업의 CEO들은 직원들을 해고하고 난 뒤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남아있는 직원들로 최대한의 능률을 끌어내야만 하는 과업에 부딪히게 된다. 가장 값싸고 효율적으로 그 두가지의 과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동기 유발 강사를 초청, 직원들이 그 교육을 듣게끔 하는 것이다.

 

그렇게 초청되어 온 동기 유발 강사들이 직원들에게 전하는 말은 자신들이 여기에 왜 왔고, 당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94년에 AT&T에서는 2년간 직원 1만 5천명을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후, 남아있는 직원들이 동기유발 행사에 참여하게끔 하였다. 그곳에서 동기 유발 강사로 유명한 지그 지글러는 직원들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해고를 당하면)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과거에는 무슨 이유에서든지 간에 한 기업에서 직원들의 대량 해고가 이뤄졌을 경우에 노동운동가나 급진적 활동가들이 이런 현실에 대항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시위를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긍정적 사고가 뿌리깊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인지, 기업들은 그런 문제를 모두 '직원들 탓'으로 돌리기 일쑤이며, 개중에는 직원들도 스스로가 '다 내탓이다'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시위를 일으키는 것을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는 없으나, 후자의 경우와 비교를 하는 것은 그들은 내면의 성찰로 현실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 해답을 밖에서, 사회에서 찾아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해답을 밖에서 찾지 않고 내면의 성찰로끔 돌려졌을 때, 이 사실을 가장 반길만한 이는 누구인가?

 

대책없는 낙관주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 북한

 

 

긍정적 사고, 즉 낙관주의를 조장하는 경우는 구성원 내부의 반발을 억제하기 위함이며,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 구성원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게끔 하려는 의도이다. 사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바람직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네가 그렇게 힘들게 사는 것은 모두 너의 잘못이다라고 그 시선을 돌리게 하는것이다. 그런 낙관주의는 체제를 유지하는데에 아주 중요하고, 그곳에는 항상 진실의 왜곡과 거짓된 진실이 존재한다.

 

이는 가까운 나라 북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민들이 국가와 당에 충성하는 내용, 그리고 북한 체제의 고마움을 깨닫게 한다는 작품,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를 담은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주민들에게 노출시키는 것도 결국은 '사회는 이상이 없다'라는 무책임한 낙관주의를 북한의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심어주기 위함이다. 이는 북한뿐만의 경우가 아니라 소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 '농담(joke)'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낙관주의는 인민의 아편'이라고까지 언급했다.

 

긍정의 사고가 경제를 무너뜨렸다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 내지는 독재국가에서 대책없는 낙관주의를 주민에게 계속 주입시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이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 그 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다. 해고당하는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그 문제의 화살을 해고당한 직원의 내면으로 돌리는 것도 결국은 체제 유지를 위해 낙관주의를 주입하는 공산주의 국가와 크게 다를바 없다. 다만 전자의 경우는 나라에서 발벗고 나서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기업들이 발벗고 나선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기업들이 그런 방면으로 발벗고 나서다 보니 본인 스스로도 긍정적 사고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영화 마진콜을 살펴보면 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데미 무어와 케빈 스페이시가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1년 전부터 부회장인 사이먼 베이커에게 위기 징후를 지속적으로 경고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징후를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무시했고, 결국은 금융위기가 발발하게 된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환상에 불과한 비과학적인 긍정적 사고를 맹신하지 말라

 

 

물론 긍정적인 행동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미소를 짓거나,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것들은 그 자체로도 전염성이 있어서 보고 있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게 만든다. 때문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그런 긍정적인 행동 모두가 아니라 대책없는 낙관주의이자, 긍정적으로 사고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는 판타지적인 생각들이다.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을 가장 광범위하게 알린 책을 꼽자면 '시크릿'이 아닐까 한다. 그 책에서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이야기 하며, 간절히 소망하면 어느새 이뤄져 있고,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와 연애를 하기 위해 자신의 차고를 그 남자의 차고로 바꾸고, 옷장에 자리까지 비워놓자 어느새 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는 한 여자의 이야기는 그런 끌어당김의 법칙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비합리적이고 사이비적인 이야기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파악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긍정적인 사고를 위해서는 부정적인 모든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가 그렇게 영향력 있는 것이라면 대체 그들이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나서서 비판적인 사람을 긍정적인 사람들로 바꿔놓으면 되지 않겠는가? 긍정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이야기는 그런면에서 긍정적 사고의 무기력함을 공공연하게 홍보한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판타지 같은 긍정적 사고를 맹신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단호하게 밝히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내면의 성찰이 아니라, 실제로의 현실을 바라봐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도처에 퍼져있는 긍정 이데올로기의 실제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긍정의 배신 - 8점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부키

긍정주의는 미국의 신사상 운동에서 태동하여 신복음주의 교회 및 기업계와 결합하면서 발전했다. 구조 조정이 일상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와 맞물려 기업이 선호하는 강력한 신념 체계로...


(2014. 02. 11) 요 근래 특정 카페에서 해당 글로의 유입이 많은 듯 하여 새로이 내용을 추가합니다.

인디게임 '아웃라스트'에는 「옛날 사람들에게 과학을 보여주면 마술이라 믿고,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면 과학이라 믿는다」라는 내용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책 시크릿도 양자역학을 통해 책의 내용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내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시크릿이 양자역학을 얼마나 오(誤)인용 하고 있는지는 기초적인 내용만 가지고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될 것이라고 믿고 노력한다면 이뤄질것이다'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뭐든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도전해보고 실패하는 편이 낫고,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공에 가까워 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요. 그렇지만 책 시크릿처럼, 아무런 노력없이 '끌어 당기기만 했더니 내것이 되었다'는 것은 길이 엇나가도 너무 엇나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책 '긍정의 배신'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시크릿을 비판하려는 책이 아닙니다. 근거없는 낙관주의와 긍정주의가 어디에 기반을 뒀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책입니다. 저자인 에런라이크가 유명한 노동 운동가인것만 봐도 유추가 가능하고,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밀란 쿤데라만 봐도 결론이 나옵니다.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낙관주의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은 밀란 쿤데라의 '농담(joke)'이라는 책에 담겨있는 구절인데, 이 책이 사실은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책입니다. 이는 다시 대책없는 낙관주의가 체제의 유지와 영속성, 다시말해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비판한 것입니다. 6. 25 전쟁통에 '서울은 안전하다'라고 외치며 서둘러 피난을 떠났던 그 날을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그 때의 서울은 안전하기는 커녕, 잔인한 북한에 의해 수복당할 운명에 놓여있었을 뿐이였습니다.

시크릿을 믿건 안믿건 그것은 개인의 의지이며,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고자 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책 '긍정의 배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놓치지는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제 능력이 부족하여 본문의 내용만 가지고는 시크릿을 비판하고자 하는것으로만 보일수도 있기에 몇 줄 추가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