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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UN 안보리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2013년 2월 12일 오전 11시 57분 함경북도 풍계리 지역에서 제3차 핵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이어 이번에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유엔안보리의 관련 결의(1718, 1874, 2087호)에 대한 명백한 위반으로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위협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후략) 

 

-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른 정부의 공식성명[url]

 

지난 몇주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된 가운데, 북한은 '우리가 언급한 중대조치를 핵실험이라 생각하지 마라'[URL] 라며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북한의 이러한 발언은 일종의 기만전술에 불과했고, 2월 12일 북한은 오전 11시 57분경에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의 이번 핵실험이 성공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국정원은 '북한의 이번 핵실험이 성공했다고 보지 않는다'[URL] 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으나 보다 정확한 결과는 2~4일후에 나온다고 하니 현재로서는 분명하게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에 이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원의 의견대로 북한의 핵실험이 실제로 실패했다고 해도 북한이 스스로 '미사일에 사용할 수 있을만큼 소형화에 성공했다'[URL] 라고 밝히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의 이러한 핵기술이 일전에 시험한 장거리 로켓인 은하3호에 접목되면,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의 핵미사일의 개발에 성공하는 것[URL]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스스로가 이번 핵실험의 의의를 '미사일에 사용할 수 있을만큼'의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부분으로 미뤄보았을 때, 은하 3호가 북한의 우주개발을 위함이였다는 그들의 주장 역시도 설득력이 없어졌다고 봐도 되겠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안보상황에 큰 위협이 되는 북한의 이번 핵실험이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고, 또 얼만큼의 영향력과 의미가 있는지를 이번 글을 통해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북한의 핵실험 역사는 이보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로 올라가야 하나 2000년도에 들어 있었던 일들만 되짚어 본다면, 2002년 10월, 북한이 직접 자신들의 핵개발을 시인한데서부터 시작된다. 그 해 북한은 다시한번 NPT(핵무기확산방지조약)에서의 탈퇴를 재선언하고, 2004년 중국의 중재로 6자 회담을 시작하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감행하게 된다.[URL]

 

북한은 당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주체95년 10월 9일 지하핵 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라고 밝힌다. 당시 북한이 실험한 폭탄은, 2kg의 플루토늄을 이용, 1킬로톤의 폭발력을 가졌다고 보도되었다. 1차 핵실험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동쪽 갱도에서 이뤄졌으며, 핵을 운반한 미사일을 시험하기 위했던것인지, 1차 핵실험의 3개월 전인 같은 해 7월, 대포동 2호 미사일의 발사도 이뤄졌다. 그 후 유엔은 북한의 핵실험 행위를 강력히 규탄, 대북제재결의 1718호를 채택하여 북한의 제제 수위를 높이게 된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1차 핵실험이 있은 후 3년 뒤,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강행한다. 당시 사용된 플루토늄의 양은 5kg으로, 1차 핵실험에 비해 약 3배 가까이 늘어나고, 폭발력은 1차 핵실험 당시의 1킬로톤에 비해 2배에서 6배가량 늘어난 2~6킬로톤으로 추정된다. 1차 핵실험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2차 핵실험 진행에 두 달 앞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인 은하 2호를 발사하게 된다. 이 역시도 핵탄두를 실어 나를 미사일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유엔은 북한의 이러한 행위에 따라  대북 제재 조치를 담은 결의안 1874호를 채택하게 된다.[URL]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북한의 김정일이 사망한 후 김정은 체제로 들어선지 2년차인 2013년에 북한은 다시 한번 3차 핵실험을 단행하게 된다. 이번 핵실험에서 사용된것이 플루토늄인지, 아니면 고농축 우라늄인지 정확히 확인된바는 없으나, 약 6킬로톤의 폭발력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번 핵실험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로 핵실험에 앞서 '은하 3호'로 불리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직후에 핵실험을 단행한다.

 

북한의 핵무기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발전했는가?

 

 

북한은 수년간 세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 일정 수준까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보유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아직까지 이를 실전에 배치하기에 그 위력은 다소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핵무기인 리틀 보이(히로시마에 투하, 우라늄 탄)가 약 15킬로톤이고, 팻 맨(나가사키에 투하, 플루토늄 탄)이 약 22킬로톤의 위력이였으니, 이번 핵실험을 통해 확인된 북한의 핵무기 위력인 6킬로톤은 이들의 절반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으로 미뤄볼 수 있다.

 

그러나 6킬로톤이라는 이 위력을 무시할수는 없다. 미국 국방위협감소국에서 북한이 10킬로톤급 핵폭탄을 서울에 투하할 경우 최소 34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한 분석자료[URL]가 있기 때문이다. 즉, 단순히 위력이 부족하다고 하여 실전에 배치 할 수 없다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위력은 제한되나 실전에 배치될 경우 우리나라에 충분한 위협을 가할만한 수준은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은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는가? 이는 핵무기가 개발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핵무기 개발은 크게 핵물질 획득과 기폭 장치 개발, 핵무기 제조, 핵실험, 소형화 및 전력화의 네 단계를 걸친다. 북한의 경우 1950년대 직후부터 핵물질인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획득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2006년과 2009년의 1,2차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확인시켜줬다. 북한에게 남은 것은 이제 만들어진 핵무기를 소형화 시켜 전력화 하는 단계만 남은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북한은 이번 3차 핵실험을 스스로 '미사일에 사용할 수 있을만큼 소형화에 성공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번 핵실험이 성공적인지에 대한 여부를 평가할 수는 없으나, 북한 역시도 핵무기의 개발 과정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북한이 핵무기의 개발, 그리고 전력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스스로 평가한대로 핵무기의 소형화에 성공했을 경우 이는 곧 핵탄두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URL]. 얼마전 북한이 발사에 성공한 은하 3호의 추진체에 핵탄두를 결합할 경우, 북한은 미국 본토를 그들의 사정거리에 넣을 수 있는 핵미사일을 개발하는데에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을 단순히 벼랑끝 전술로만 봐야하나?

 

 

대부분의 시각이 그러하겠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것은 미국으로 인해 벼랑끝으로 몰린 북한의 최후의 행동이라는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북한 스스로가 핵실험을 할때마다 이 모든것은 미국의 제제로 인한 것이라는 포지션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번 3차 핵실험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번 핵실험의 주된 목적은 미국의 날강도적인 적대행위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보여주고 나라의 자주권을 끝까지 지키려는 선군조선의 의지와 능력을 과시하는데 있다[URL]"라며 미국으로 인해 핵실험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을 벼랑끝 전술로 본다면, 북 핵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무작정 북한의 손에 뭐든지간에 쥐어주기만 한다면 쉽게 해결된다. 모든것이 미국의 압박으로 인해 시작된 핵실험이라면, 그들이 핵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그저 압박만 풀어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북한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박도 있을 수 있다. 94년,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준다고 한 북-미 제네바 협정이 있은 직후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했으나, 건설이 지연되어 북한이 다시금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고[URL] 말이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 포기를 대가로 경제적 지원과 체제보장을 약속했던 6자 회담을 스스로 거부한것으로 미뤄볼 때 그런 주장이 설득력있게만 보일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북한이 왜 지속적으로 핵실험을 하는지는 다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 다른 시각은 바로 북한은 그저 핵무기를 보유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그저 핵무기를 보유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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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이런 현실에는 흔히 해와 바람의 우화가 비유되곤 한다. 해와 바람이 한 나그네의 외투 벗기기로 시합을 한다. 바람이 세게 불어오면 나그네는 외투를 더 여미고, 햇볕이 쨍쨍해지니 외투를 벗는다는게 그 이야기이다. 앞선 단락에서 이야기한것처럼,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 우화를 북한의 현실에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없는것은, 우화의 경우에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 그 자체가 목표였으나, 현재의 경우에는 '북한이 외투속에 숨기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위협이 된다면 뺏으려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외투를 벗긴다는 행동은 같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즉, 우리는 북한의 이러한 행동이 모두 선군정치의 일환으로, 재래식 무기로는 더이상 한국의 군사력을 넘어서기가 어려워지자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한다. 그런 현실을 이해함으로써, 해와 바람의 이야기가 왜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지를 알 수 있게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의미가 있는것이였지만 효과를 보지 못한것은 그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볕을 보여주자 나그네는 해에게 '나 외투 벗었다'라며 자신의 외투를 흔들며 보여줄수는 있지만, 정작 위에 떠있는 해에게 자신이 외투속에 숨기고 있는 것은 보여주지 않은 채 그저 위에서 외투를 흔들고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이를 생각해볼 필요도 없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의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핵실험에서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사실에서 합리적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북한의 세차례에 걸친 핵실험은 모두 '미사일 발사 -> 대북 제제 -> 이에 대응한 핵실험'의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도 할 수 있으나, 북한이 모두 핵실험을 할때에 대북 제제에 의한 핵실험임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그들이 핵실험을 벼랑끝 전술로 사용한다면, 굳이 미사일을 발사한 후 미국을 핑계삼아 핵실험을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핵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미사일 시험 후 핵실험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협상테이블에 나오지 않는것은 왜인가?

 

이번 3차 핵실험을 통해, 성공 여부의 정확한 확인은 2~4일 가량 소요되고, 실패했을수도 있지만, 북한은 이제 사실상 미국 본토를 사정권안에 넣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미국의 이야기이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미 북한의 핵무기 사정거리내에 있었다. 북한의 핵위협이 현실화된 지금,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게끔 유도하기 위해서 적절한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