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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마도 좌익과 우익의 정치적인 대립이 떠올려질 것이다. 이는 이데올로기를 정치적인 의미에만 한정해 이해하는 경우로, 이러한 연장선속에 오늘날을 생각해본다면 이제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 볼 것이다. 물론 국정원의 선거 개입 논란이나,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 등을 고려해본다면,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제 이데올로기의 전형인 '색깔논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련의 사태들로부터 좌우 대립이 예전만큼 심하다고는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보다 확장하여 이해한다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데올로기에 뒤덮여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확장해보자. 이데올로기는 이념, 또는 신념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를 보다 유연하게 해석한다면 한 개인의 가치판단의 기준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낙태'와 관련한 논쟁이 오간다고 했을 때, 이를 긍정적으로 볼 것인지 또는 부정적으로 볼 것인지는 개인이 보수인가 또는 진보인가라는 한 개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결정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토대로 다음의 내용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한 개인에게 의도적으로 조작된 이데올로기를 주입할 수 있다면 대중을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가 살아남는 방식이고, 또한 없어진 것처럼 교묘히 위장한 채 생존할 수 있었던 방법이다. 이는 기업이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친환경 기업으로 포장하거나 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방식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물론 이는 단순히 돈의 현장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와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이제 정치권에서 이데올로기가 실종됐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새누리당이 민주당 의원에서 무작정 빨갱이, 또는 종북좌파 세력이라고 언급한 상황을 한번 떠올려보자. 자신이 새누리당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닌 이상 이 의견에 공감할 수 있는 자는 얼마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색깔론은, 즉 이데올로기는 자신들의 고정 지지층을 단결시키는 효과는 분명히 있지만 소위 중도 층이라고 불리는 세력을 끌어오는 데에는 부적합하다. 물론 이는 비단 우익 세력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좌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야권이 여권에게 무작정 친일 또는 친미와 같은 내용을 통해 그들을 언급한다고 해도 사실상 별다른 효과가 없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의 이데올로기는, 그 옛날의 과격한 방식에 비해 매우 교묘하게 숨어들었다. 이는 '시민들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 내지는 '시민들을 위해 일하겠다!'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책은 "당신이 의심이 많다고 해서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실제로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에 속어 넘어가곤 한다. 예컨대 이미 어떤 이데올로기를 주입당한 사람은 자신이 믿지 않는 이데올로기는 매우 이성적으로, 그리고 냉철하게 비판하는 데에 반해 그 반대의 경우는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혹자는 이를 선동 당했다고 표현하고, 또 다른 이는 이중 잣대, 또는 진영논리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물론 이는 그 옛날의 보수, 진보로 대표되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는 있지만, 현실 속에서 그 누구도 예전처럼 이를 직접적으로 들먹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잘해주겠다'와 같이 자신의 색깔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성에게 사회의 많은 부분이 개방되고, 실제로 UN의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남녀평등 지수는 세계 13위로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언론과 매체는 여전히 여성들의 능력보다는 미적 측면을 강조한다. 사실상 이는 그 옛날 성에 따른 역할을 강조하는 것임에도 사회는 이를 '자기관리'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통해 이러한 반페미니즘 현상을 은연중에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남성의 경우는 가부장적이라 표현되던 남성성은 사회에 의해 모두 거세당한 채 그들에게 주어지던 책임과 의무만이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남성은 자신의 삶이 오히려 남녀평등이 아니라 불평등 하다고 주장하지만 사회에서 이런 반대되는 사상은 용납되지 않는다. 성재기 전 남성연대 대표의 투신 퍼포먼스도 결국은 이러한 연장선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 사회에 의해 특정한 성역할을 권력층이나 식자층에게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처럼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주변에, 그리고 아주 은밀하게 숨어들어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과연 이 책이 어떤 성향의 책인지를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출판사에서 제공한 소개에 '모두가 ‘실용’을 운운하고 ‘중도’가 최선인 양 받들어지는 시대, 반反이데올로기의 외양을 띤 우파가 득세한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구로 미뤄보아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실 이데올로기를 우파가 유리하게 사용한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사실은 책이 이야기 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속에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이용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층과 피지배층, 기득권층과 그렇지 못한 세력 간의 이야기이기고, 이를 좌우논쟁이나 우파만의 문제로 가져간 것 역시도 좌파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좌파 역시도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이데올로기의 이용이 우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유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나아가 우리 주변에 어떻게 녹여 들여지고 있는지를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이를 우파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 테고, 이는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꼬집는 책을 읽음에도 그러한 문제 속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모순 속에 사로잡히게 될 테니 말이다.


겟 리얼 - 6점
일레인 글레이저 지음, 최봉실 옮김/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