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은 바로 스포츠다. 스포츠는 당신의 피부 색깔도, 당신의 정치적 성향도, 당신의 생김새도, 당신의 종교관도, 그리고 당신의 신념이 무엇인지도 따지지 않는다. 스포츠는 당신에게 단 하나만을 요구한다. '실력'이다. 이는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붓는다고 한 들, 선진국의 그것이 자메이카의 육상 실력을 따라잡기는 힘들고, 아무리 좋은 시스템과 환경을 갖추었다고 한들 그들이 무조건 상위권에 랭크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월드컵 4강과 같은 이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한 그들이 유색인종이라고 해서, 그들의 사회가 미개하다고 해서 그들의 실력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스포츠는 평등하고, 민주적이다.


다만, 모든것을 실력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스포츠는 냉정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자. 우승자를 가려야 하는 스포츠에서 그 외적인 것으로 다른 팀을 배려해줄 필요가 있을까? 또한, 그렇게 배려받은 팀이 승리할 경우, 이로 인해 패배한 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스포츠에서의 냉정함은 승리했다는 이유 만으로 상대팀을 배격할때 생기는 것이지, 모든 것을 실력으로 판단하기에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먼저 인식해야 한다. 경기 후 승자와 패자가 악수와 포옹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스포츠는 충분히 따뜻하다.


이러한 스포츠의 모습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근묵자흑이라고 했던가. 우리의 사회가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절대적으로 민주적이여야 할 스포츠는 사회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최근 여러 축구 프로팀들의 승부조작 논란, 그리고 핸드볼 경기에서의 오심등은 명백히 실력으로만 평가받아야 할 경기에서 외적인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 사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옛날, 20세기 초반에 만연하던 인종차별도 마찬가지로 스포츠 경기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데,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 42가 바로 그러한 내용을 담고있다. 바로 야구 경기에서의 인종차별이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



MLB를 대표하는 야구선수를 꼽아본다면 아마 이전에 '일급살인'에서 다뤘던 조 디마지오나 테드 윌리엄스, 베이비 루스, 루 게릭 등 많은 선수들을 꼽아볼 수 있겠다. 그러나, 전 구단에서 영구 결번될 만큼 미국 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인물은 단 한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영화 42의 모델인 재키 로빈슨이다. 그의 성적은 평균 타율 3할 1푼 1리로 나름 준수한 성적을 갖추고는 있지만, 앞서 나열했던 인물들과 그의 성적을 비교해봤을때, 그의 타율은 사실 추레하기 그지없다. 때문에 재키 로빈슨이 왜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회자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납득하지 못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야구는 백인만의 전유물'이라고 인식되어지던 20세기 초반의 미국 사회에서 백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야구를 해 나갔던 기념비적인 인물임을 생각해본다면, 그의 백넘버 42번이 왜 MLB 전 야구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재키 로빈슨의 역사는 8월 28일에 시작된다.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가 흑인 선수를 대상으로 적격시험을 실시했으나 사실상 영입의사는 없는 입단 시험이였고, 때문에 메이저 리그에 흑인선수는 전무한 상태였으며, 실제로 흑인 선수를 영입하고자 하는 구단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에 오늘날 LA다저스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의 단장이자 클럽 회장이었던 브렌치 리키는 재키 로빈슨을 영입하기로 결정하고, 앞서 언급한 8월 28일, 둘 간의 대화가 이뤄진다. 이는 영화속에서도 자세히 묘사되고 있고, 영화속에서 언급된 대화는 실제로 그 둘이 나눴었던 대화이기도 하다.


"자네 성질을 다스릴 수 있겠나? 백인 야구에 흑인 한명, 그 반응을 상상할 수 있겠나?"

"맞서 싸울 배짱도 없는 선수를 원하세요?

"아니. 나는 반격하지 않는 용기있는 선수를 원하네."

"내게 유니폼과 백넘버를 주시면, 나의 용기를 드리겠습니다."


인종차별이 가지고 있는 무서움은, 속된말로 잘해야 본전도 못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한들, 인종차별주의적인 사상이 남아있는 이들은 그의 피부색이 단지 까맣다는 이유로 계속 비난해올 것이고, 만약 그 비난에 재키가 감정적으로 대응할 경우 이는 다시 흑인을 비하하는 이유로 사용되게 되고, 결국 그는 메이저리그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때문에 다저스의 단장인 리키는 재키에게, '반격하지 않을 용기'를 요구한것이다. 그 둘 모두가 감리교 신자였기 때문에, 리키의 요구를 성경의 한 문구를 인용하여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은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언 12:16)


쉽지 않았던 그의 메이저리그 입성기



입단을 했다고 해서 그가 온전히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게 된 것은 아니다. 입성을 위한 첫 걸음을 뗀것에 불과하다. 재키는 일단 실력을 테스트 받기 위해 몬트리올 로얄의 스프링 캠프에 참여하게 되고, 그 해에 마이너 리그에 데뷔하게 된다. 그는 다섯번의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여줬고, 특히 수준급의 주루 센스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영화속에서도 잘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선 이듬해 1947년 시즌 개막 6일 전 재키는 브루클린 다저스 선수로 선발하게 된다. 그러나 같은 팀 선수들의 반발이 있었는데, 그들은 재키와는 경기를 함께 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단장에게 제출하게 된다. 이런 일이 있은 직후, 브루클린 다저스의 매니저인 레오 듀로셔는 선수들을 소집한 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긴다.


"재키 로빈슨과는 경기할 수 없다는 일부의 이야기, 그리고 너희가 작성하고 모두가 서명한 청원서 역시 잘 살펴봤다.

지금 난 그가 노랗든, 까맣든, 얼룩말처럼 줄무늬가 있어도 상관없다.

우리 승리에 도움이 되고, 내가 본 모든것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우리 구단에서 경기할 수 있다."


영화속에서는 위와 같은 발언을 한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로빈슨은 우리 구단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해준다'라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영화속에서 처음에 리키가 다저스의 다른 관계자들을 설득할때 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쨌건, 무슨 이야기를 했던간에 그가 던지는 이야기는 간단하다. 프로라면 실력으로 승부하라는 것. 야구와는 전혀 관계없는 피부색으로 백날 논쟁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얼마나 당연한 이야기인가?


그의 곁엔 '팀'이 있었다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4월 15일, 재키 로빈슨은 에베츠 필드에서 메이저 리그 야구 데뷔를 했다. 미국 야구사에서 인종의 벽을 뛰어 넘은 (1880년대 이후)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온전하게 자리잡은 것은 아니였다. 타 팀의 감독으로 부터 그가 단지 피부색이 까맣다는 이유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고, 또한 팀 내에서도 그의 입지가 완전하게 굳혀진 것은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더군다나 그가 참여한 원정경기에서 팀의 숙박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투수로부터 머리를 향한 빈볼을 맞은 후 벌어진 벤치클리어링 모습은, 팀원들이 조금씩 그를 향해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것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모여서, 그가 분명하게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기가 열린다. 바로 신시내티에서 열리는 원정 경기이다.


당시 팀의 주장이였던 피 위 리즈는 켄터키 출신으로, 인종차별주의가 아직까지도 깊게 남아있던 지역이였다. 때문에 그는 재키와 함께 경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숱한 비난을 받아야만 했고, 또한 살해 위협까지 편지를 통해 서슴없이 보내왔다. 그런 그가 신시내티에서 열리는 경기에서 재키와 함께 경기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많은 위험 부담을 가지고 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경기장에서, 다른 그 어떤 선수도 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게된다. 바로 경기장 위에서 재키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것이다.


아마 내일은 우리 모두가 42번을 입을지도 몰라. 그 방법으로 그들은 우리를 따로 말하지 않을거야.


피 위가 재키에게 말한 이 한마디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표현한 아주 멋진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그의 용기있는 행동덕분에 재키는 아마 더 빨리 팀에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던 피 위 리즈는 1984년, 유격수로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됬다.


인생은 구경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흑인을 영입하기로 결단을 내렸던 브렌친 리키, 브루클린 다저스의 용기있는 행동 덕택에 이제는 메이저리그에서 흑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동양인 출신 선수들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들 역시도 LA다저스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게 된 경우가 많았으니, 어떤 면으로는 다저스가 인종차별 타파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도 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IMF시절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박찬호도 다저스였고, 오늘날 류현진도 마찬가지로 다저스 선수이니 말이다. 하지만 박찬호와 류현진과 같은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재키 로빈슨의 참을 줄 아는 용기에서 시작된것이나 마찬가지다. 유색인종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미국인들의 머리속에 자리잡아준 것이 바로 그이니 말이다.


재키는 메이저리그에 유색인종이 경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에 어떻게 보면 순교자의 역할을 자처한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는 이런 일을 하면서 '인생은 구경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아무리 뒤에서 문제점을 비판한다고 한들, 실제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 부당한 현실은 절대로 바뀌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정신력으로는 버틸 수 없었던 그러한 숱한 인종차별적인 발언들을 그가 감내할 수 있었던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그는 말년에 구단이 자신을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하려고 하자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영원한 다저스 맨으로 남은채 그의 야구 생활을 마감했다. 이런 그의 행동을 기념하여 메이저리그에서는 30개의 전 구단을 통틀어 42번만이 유일한 영구 결번이며, 나아가 재키 로빈슨이 첫 경기를 했던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하여 당일날에 열리는 모든 경기에 전 구단 선수들은 백넘버가 42번인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함으로써 그의 삶을 기리고 있다. '아마 내일은 우리 모두가 42번을 입을지도 몰라'라고, 우스개 소리로 피 위가 재키에게 말한 것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야구는 민주주의가 사실임을 분명하게 증명했다

야구의 기록표는 결국 민주적인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따르는 종교가 무엇인지 말하지 아니하고

당신의 투표 행위나 피부색을 알 수도 없다

그건 특정 야구 선수의 단순한 기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