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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당신의 불안은 안녕하십니까?

by 카쿠覺 2015. 11. 15.

 

불안은 정상적인 정서 반응이다

 

여러 연예인들이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로 인해 방송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사들이 많이 보도된 바 있으며, 최근 대표적인 연예인으로는 김구라와 정형돈을 꼽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는데, 이는 정상적인 정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 산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경우나, 길에서 연쇄 살인범을 마주쳤을 때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서 장애가 있다고는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위험이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불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일반적인 정서 반응이 아니라 병적인 불안 증세로 구분하게 된다.

 

불안장애는 어떤 특정한 증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신적 질환을 폭넓게 지칭하는 용어다. 고소공포증이나 혈액공포증과 같이 특정 상황이나 물체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증세나, 발표와 같이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회 공포증, 들어온 문으로만 나가야 한다거나 길을 걸을 때 줄을 따라서 걷는 것과 같은 강박장애, 특별한 이유 없이 긴장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범불안장애, 사고나 재해 이후 겪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그것이다.

 

오늘 다루려는 책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이와 같은 불안장애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으로, 저자인 ‘스콧 스토셀’은 이 책을 통해 불안의 수수께끼를 풀려 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불안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한다. 나는 의사도 심리학자도 사회학자도 과학사가도 아니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불안에 대해 글을 쓴다면 나보다 훨씬 학술적 권위가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은 종합이자 르포르타주다.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대중문화, 최신 학술 연구에서 불안에 대한 탐구들을 한데 모으고, 이걸 정말로 나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불안의 직접 경험과 함께 엮으려 한다.” (41p)

 

오늘날 불안장애는 보편적인 증세다

 

책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의 저자 ‘스콧 스토셀’은,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듯이 ‘불안’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저서가 있다면 여러 사람의 사례를 찾을 필요 없이 저자 단 한명의 사례만을 가져다 쓰면 될 정도로 ‘걸어 다니는 불안 종합병원’이다. 그렇지만 이런 불안장애가 저자만의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책 속에서는 미국과 영국에서 증가하고 있는 불안장애 환자와 관련한 통계를 제시함으로써 보편적인 현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지난 2008년 39만 명이던 불안장애 환자가 2014년 52만 명으로 5년 사이 75% 가까이 증가함에 따라 그 숫자가 증가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30년 전만 하더라도 불안장애라는 공식적인 병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1980년 불안을 치료하는 약물이 개발되어 시장에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불안장애가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 3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편람에 프로이트 식 ‘신경증’이라고 되어 있었다.” (26p) 물론 정신과 질환이라는 것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공식적이지 않았던 진단명이 새롭게 생겨났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불안장애라는 것이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는 좋은 근거가 된다.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왜 불안을 느끼는 것일까. 오늘날 신경과학과 의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뒀음에도 이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내리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치료 방법 역시도 각기 불안의 원인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는지에 따라 나뉘고 있다. “병적 불안은 히포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현대 약학자들의 생각처럼 의학적 질환인가? 아니면 플라톤과 스피노자, 인지행동 치료사들 생각처럼 철학적 문제인가? 프로이트와 그 추종자들이 생각하듯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성적 억압에서 비롯된 실미적인 문제인가? 혹은 쇠렌 키르케고르와 실존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정신적인 병인가? 아니면, W.H.오든, 데이비스 리드먼, 에리히 프롬, 알베르 카뮈, 또 무수히 많은 현대 사상가들이 선언했듯 문화적인 병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 구조의 한 기능인 것일까?” (31p)

 

때문에 저자는 자신의 불안장애 치료를 담당하던 W박사에게 불안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묻고, 박사는 자신의 책에서 본인이 서술한 내용을 쓰라고 얘기한다. “W박사는 이렇게 적어 보냈다. ‘불안은 앞날의 고통에 대한 걱정, 곧 막을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참사를 두려운 마음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83p) 박사는 두려움(fear)과 불안(anxiety)를 비교하며 현실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위협과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위협의 차이를 통해 이 둘을 설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산에서 길을 잃은 것, 연쇄 살인범을 만난 것 등은 실재하는 위협이지만, 발표에 있어 느끼는 불안이나 치즈나 꿀에 대한 공포증과 같은 것은 실재하는 위협이 아닌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있는 위협에 의해 발생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런 불안은 개인의 정서적인 문제가 신체 증상으로 발현됨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봤다.

 

“거의 모든 불안증의 뿌리에는 박사가 ‘존재론적 숙명’이라고 부르는 어떤 실존적 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늙어간다는 것, 죽으리라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리라는 것, 정체성을 뒤흔드는 실패와 모욕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는 것, 개인의 자유와 정서적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고 우리 욕구와 주변 사람과 사회의 제약 사이에서도 균형을 잡아야만 하는 것 등. 이렇게 보면 쥐나 뱀이나 치즈나 꿀에 대한 공포증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실존적 고뇌가 전치되어 외부적인 사물에 투사된 것이다.” (85p)

 

당신의 불안은 안녕하십니까

 

그럼에도 책은 불안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 그게 맞는 것 일수도 있다. 정체가 분명하다면 불안이라기보다는 두려움이 옳은 표현일 테니까.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은 있다. 불안이 마냥 부정적이고, 치료해야 만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적당한 수준의 불안은 인류의 성장에 있어서 원동력이 되어 왔으며, 실제로 상당수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인들의 상당수가 불안장애를 가지고 살아왔다. ‘4대 천왕’이라는 수식어로 근래 예능에 있어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오고 있는 정형돈도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만약 불안장애가 문제가 되었다면, 이들이 족적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비단 이런 위인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발표를 앞두고 최대한의 준비를 하는 이유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도 있겠지만, 발표에 있어서 자신이 말을 더듬거나, 던져지는 질문에 답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했을 때 청중들로부터 받을 비난이나 그로인한 당혹감 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일 수도 있다. 즉, 발표라는 상황에서 자신이 맞닥뜨릴 ‘정체성을 뒤흔드는 실패와 모욕을 당할 가능성’에서 나타나는 불안을 최소화 하고자 더 열심히 준비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발표라는 특정한 상황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불안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 운동선수, 연예인, 기업인, 예술가, 학생들의 성취도가 낮아질 것이다. 창의성은 사라지고 아예 씨앗조치 뿌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대신 우리는 정신없이 바쁜 사회에서 늘 꿈꾸어오던 이상적인 상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빈들거리는 삶에 도달할 것이다. 인류에게 핵전쟁만큼이나 치명적인 일이다.” (38p)

 

불안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불안을 삶에 있어서 열정을 높이거나 혹은 자극을 주는 바람직한 도구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과도한 불안을 적정한 수준으로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불안과 평생을 함께해왔던 저자인 ‘스콧 스토셀’이 불안의 관한 폭 넓은 지식과 어떻게 하면 불안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는 책이다. 불안을 없애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하지는 말자.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적당히 불안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자.

 

키르케고르가 말했다.

“따라서 적당히 불안해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을 배운 셈이다.” (53p)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8점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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