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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한니발 : 원작의 한계를 안을 수밖에 없었던 영화

by 카쿠覺 2015. 9. 8.
"Would you ever say to me, 'Stop. If you loved me, you'd stop'"
(이렇게 한번 말해봐. 그만해요. 날 사랑한다면, 그만해요.)

"Not in a thousand years."
(꿈깨시지.)

영화 《한니발》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영화로서의 재미뿐만 아니라 작품성도 두루 갖췄다고 평가받는 영화 《양들의 침묵》의 후속작이다. 한니발은 양들의 침묵에서 클라리스가 렉터의 도움을 통해 버팔로 빌을 검거한 뒤 정식으로 FBI 요원이 된 10년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직전의 작품에서 렉터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앤소니 홉킨스는 한니발에서도 같은 역할로 출연하지만, 클라리스 역할을 맡았던 조디 포스터는 출연을 고사하고, 이에 같은 역할을 줄리안 무어가 맡았다. 소설의 내용을 상기시켜보면 조디 포스터가 출연을 거부한 이유가 충분히 납득된다. 소설 한니발은 상상 이상으로 클라리스라는 인물을 망가뜨려놓기 때문이다.

영화 《한니발》은 전작에 비해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아마도 변해버린 렉터와 클라리스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영화를 향한 혹평은 영화가 뒤집어 써야 할 것이 아니라, 원작 자체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영화는 소설의 기본 이야기를 잘 따라가고 있다. 몇 가지 빠져있는 부분이라면 아마도 렌들러와 클라리스 사이의 관계가 자세히 그려지지 못했다는 것일 텐데, 이것도 몇 가지의 이야기 속에서 서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음은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때문에 전반적으로 영화는 나름 정직하게 소설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다. 메이슨이 렉터를 돼지 밥으로 주면서 죽이려던 순간 클라리스와 렉터가 함께 탈출하는 순간까지는 그렇다.

소설과 영화는 결말에서 극명하게 엇갈린다. 영화에서는 클라리스가 마지막 순간까지 렉터를 잡으려고 했지만 놓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비해 소설은 정반대다. 소설은 클라리스가 렉터와 함께 렌들러의 전두엽을 먹고서는 남미로 떠나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산다는 디즈니식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마 이정도의 결말을 위해서라면 클라리스가 렌들러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지금까지 정의감에 불타있던 한 FBI 요원이 갑자기 인육을 서로 나눠먹고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나마 이런 결말에서는 클라리스가 렉터를 살리려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에 설득력을 부여하니 나름의 의미는 있을테다. 반면에 영화에서는 살려줬다가 다시 잡으려고 하니, 클라리스가 오락가락 한다는 느낌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당한 법의 심판대 앞에 렉터를 세우고자 했던 게 클라리스의 최종 목표라고 한다면 납득은 할 수 있다. 생명은 빼앗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만 하더라도 렉터는 클라리스의 멘토 같은 역할이었지, 한 여자로서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한니발》에서 클라리스를 살리려고 했던 렉터의 행동들은 남녀관계보다는 사제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느껴졌다. 물론 영화 초반에 메이슨이 "렉터가 클라리스에게 반했던가?"라는 질문에 바니가 "예"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것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렉터의 마음이지 실제 렉터의 모습은 아니었기에. 하지만 영화의 끝, 어떻게 보면 소설의 끝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끝에서는 렉터가 확실히 한 여성으로서 클라리스를 대했다는 것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드레스를 입히거나, 키스를 하려고 하는 등의 모습들에서 말이다. 그래도 양들의 침묵 이미지가 강인하게 남아있다면 이 역시도 큰 거부감이 없을 만큼 모호하게 영화는 표현했다. 영화를 보면서 키스보다는 혀를 깨물지는 않을 까는 생각이 계속 들었으니 말이다.

결국 렉터는 양들의 침묵에서만 가장 완벽한 존재였다. 앤소니 홉킨스가 출연한 본 시리즈물에서 놓고 본다면 단언컨대 한니발에서 렉터가 하나의 평범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순한 악인으로 변했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건 영화가 렉터와 클라리스를 아예 망쳐놓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만 고려해도 영화는 잘 만든 영화로 보인다. 소설의 프롤로그까지 영화화해서 만들었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혹평들을 영화 《한니발》이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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