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폭풍우가 몰아친 후, 롱레이크에는 기이한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군인들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듯 하나, 시민들에게 알려주지는 않고, 다만 그 기이한 안개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안개가 몰려온 이후, 안개속에 존재하는 무언가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속에서, 안개에 갇힌 채 알지도 못하는 그 무언가의 존재에 대한 공포를 안고, 슈퍼마켓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고수하고 도움을 기다린다. 안개가 그들의 시야를 가리는 것처럼, 그들 역시도 자신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슈퍼마켓에 모인 군중들은 크게 2가지 부류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카모니 부인을 중심으로 영화속에서 일컫는 '주님'을 믿는 그룹과, 그리고 그들의 비 정상적인 행동에 동의하지 못한 드레이턴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그룹이다. 그 두 그룹은 현 위치를 고수할지, 아니면 이곳에서 벗어날지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러한 논쟁은 '앞 날을 전혀 알지 못하는'그들의 특정한 상황을 전제한채 이뤄지게 된다. 영화의 제목을 안개(mist)로 뽑은 이유는 아마도 안개속에 갇힌 앞날을 담보로 한 그들의 논쟁, 그리고 심리의 변화를 그리고자 함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안개속에 갇힌 극중 인물들의 모습을 우리네의 삶에 비유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아마도 그래서였을까. 영화가 던져주고자 하는 메시지마저 안개속에 빠져버리고 말게 되었다.

 

영화의 메시지는?

 

 

영화가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다면,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을법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무한도전의 봅슬레이 특집(마지막 1분)의 경우 그들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고, 예능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예능의 가치만을 추구했던 여타의 다른 방영분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정도로 보면 족하다. 물론 영화 평론가들이 볼 때, 단순히 웃기거나 또는 액션으로만 가득한 영화를 '수준이 낮다'라고 평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즐기고자 보는 다수의 대중의 입장에서 그런 논쟁은 불필요하다.

 

그러나 영화가 불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려고 한다면 이는 분명히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도저도 아닌 특집은 다수의 대중에게 사랑받기 힘들며, 공감하기도 어렵다. 역시나 무한도전의 예를 들어본다면 아마도 '식목일특사'편을 꼽을 수 있겠다. 해당 방영분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환경보호'라는 점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내용을 살펴본다면 예능으로서도 부족하고, 메시지도 명확히 전달되지 않은것이 사실이다. 같은 환경보호라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예능의로서의 가치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도 분명했던 무한도전 나비효과 특집을 떠올려본다면 그 차이는 분명하다. 식목일특사 편의 경우,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했지만, 나비효과 특집의 경우에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중의 사랑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렇게 불분명하게 메시지를 던지려고 하는것은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약간의 부족함을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다. 패션쇼에 등장하는 의상을 아주 평범한 일반인이 입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곳에서 어떤 점을 느낄 수 있을까? 여기저기서 끌어온 화려한 미사여구? 아니다. 아마도 '옷을 왜 저렇게 입었나'라는 생각정도로 끝날것이다. 영화 역시도 마찬가지다.

 

영화 미스트의 메시지

 

 

한줄로 영화 미스트의 평을 요약해보자면 '패션쇼에 등장하는 옷을 입은 일반인'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만큼 영화는, 분명 무언가 메시지를 던져주고자 했지만 명확하게 던져주지는 못했다. 대개 영화 미스트를 보고난 후 생각해볼법한 메시지로는 세가지 정도가 될 수 있다. 이는 ①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살아나가라 ②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 ③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모르는 인간의 불확실함을 형상화 하는 것 정도가 되겠다.


포기하지 말고 살아나가라는 메시지는 대개 '위기에 닥친 주인공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결국 살아남는다'는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는 형태를 띄는 영화가 던져주는 일반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화 '미스트'는 이러한 결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는 아마 영화를 보았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그 밖에도 던지고자 하는 여러가지 메시지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유의미한 메시지는 아마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부분이 될 것이다.

 

미스트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마켓 내의 카모디 그룹에 의해 쫓겨나다시피 그곳을 빠져나온 드레이턴과 그 일행은 살아남기 위해서 무작정 달려간다. 하지만 드레이턴의 일행에게 다가온 결과는 참담했다. 보이지 않는 앞, 그리고 점점 가까워져오는 듯한 크리쳐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앞은 없다고 생각했고, 그들에게 남은 미래라고는 고작 죽음만이 다라고 생각했다. 일행은 다섯, 드레이턴이 가지고 있던 총에 남아있는 탄약은 4발. 생존을 위해 전진하기에는 부족한 탄약이고, 모두가 자살을 택하기에도 부족한 탄약이다.


결국 드레이턴은 자신이 크리쳐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로 결정하고, 남은 일행들에게는 자신의 탄약을 통해 편안한 죽음을 택하도록 한다. 어떻게 보면 이는 드레이턴의 희생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영화의 전반적은 흐름속에서 그의 그러한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였지만,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가, 그 순간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통해 그러한 결정을 내린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드레이턴의 희생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일까. 희생을 택한 드레이턴은 결국 생존하게 된다. 드레이턴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정한 한 여성도 영화의 마지막에 살아남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극의 초반에, 자신들의 자녀를 구해야 한다며 크리쳐가 넘쳐나는데에도 마켓의 밖으로 뛰쳐나간 바로 그 여성이다. 그는 자신들의 자녀를 위해 본인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라 볼 수 있고, 결국 그녀는 영화의 마지막에, 군대에 의해 구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을 보자면, 영화 '미스트'가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일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야만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종교적 구원의 전형적인 방식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안개속에 빠져버린 영화의 메시지

 

 

영화가 던져주고자 하는 가장 유의미한 메시지를 찾아본다면, 앞선 단락에서 언급했던 것 처럼 '희생을 통한 구원' 정도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어떻게서든지 유의미한 메시지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에서 나오는 것일 뿐, 일반적으로 영화를 본다면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영화 '미스트'를 보고서 가질 수 있는 느낌의 상당수는 대개 결말이 허무하다는 부분에서 오는 것일테니 말이다.

 

사실, 그런 측면들을 고려하고서 영화를 바라본다면, 영화의 가장 합당한 결론은 '인간의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와 같은 허무한 결론을 내릴수도 있을테다. 어찌됐거나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을 꼽는다면 그러한 허무주의를 극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는 점일텐데, 이는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부분이다. 새드엔딩을 좋아하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외려 이러한 결말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도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린다면, 영화 '미스트'에서 감독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앞서 세 가지의 메시지를 살펴보았고, 그 중 하나는 미스트와는 전혀 관계되지 않는 부분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허무주의'와 '희생을 통한 구원' 두 가지 역시도, 어느 한쪽이 분명한 메시지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도 확인했다. 결국 영화의 제목과 같이, 미스트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도 안개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만약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이 '불확실한 미래와 허무주의'였다면, 그래서 관객들에게 의도적으로 이러한 혼란을 준 것이라면 아마 앞서 언급했던 제작자의 부족함이라는 내용은 취소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