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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골든 슬럼버(Golden Slumber) : 진정한 친구란?

by 카쿠覺 2013. 3. 23.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교제하며 살아간다. 그런 수 많은 관계들을 동료, 선배, 후배와 같은 표현을 통해 정의내리곤 한다. 이러한 관계들을 정의내리는 데에는 여러가지 표현들이 사용되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예컨데, 동료라 함은 직장이나 그 밖의 단체속에서 함께 일을 해나가는 사람을 일컫는 것일테고, 선/후배라면 일반적으로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높은 학년, 또는 낮은 학년을 일컫는다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 또한 그 관계속에서의 행동 역시도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친구'라고 부르는 표현은, 그 어떤 표현보다 더 많이 사용하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가깝게 지낸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친구라면 동료와 다를바가 없고, 단순히 나이만을 기준으로 하여 친구를 설명한다면 나이가 다름에도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는 경우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만큼 친구라는 표현은 상당히 중의적이지만, 개개인이 무슨 형태로든지간에 이런 친구는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라는 하나의 판단점은 있을테다.

 

진정한 친구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것이고, 때문에 그 곳에 정답이란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모범답안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영화 '골든 슬럼버'가 바로 이에 대한 모범답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골든 슬럼버 : 스릴러 영화?

 

 

영화 포스터에서는 골든 슬럼버를 스릴러 영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의 플롯을 따르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주인공에 비해 많은 권력을 가진 어떤 사람, 내지는 집단이 한 사람을 곤경에 몰아넣고, 주인공이 그 상황을 타개해나가는 전형적인 내용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골든 슬럼버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주인공이 총리 암살범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포스터에서도 영화의 주인공을 '오스왈드'에 비교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디어와 정치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총리 암살범으로 지목되어 쫓기는 이야기는 스릴러로써 굉장히 가치있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내용을 다룬 스릴러도 많으며, 이는 케네디 암살사건과 같이 실화로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골든 슬럼버는 그만큼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를 영화에 담아냈지만, 그 문제의 해결법은 평범한 스릴러 영화와는 차이가 있었다. 대개의 스릴러 영화는 화려한 액션으로, 또는 치밀한 논리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골든 슬럼버의 경우는 다소 달랐기 때문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눌한 주인공

 

 

대개의 스릴러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거대 권력 앞에 무기력한 존재로 묘사 되나, 주인공 자체의 능력이 모자란것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이전에 리뷰하기도 했었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예로 들어보자. 영화속 주인공인 복남이는 극에서 거대 권력으로 묘사되는, 섬에 살고 있는 남자들 앞에서 굉장히 무기력한 존재로 그려지고, 그들의 앞에서 굴복하고 말지만, 복남이 자체가 그들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감내하고 살아갔던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그녀는 힘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른 영화 역시도 이와 비슷하다. 물론 다른경우도 있을테지만, 이런 경우는 주인공이 애초에 굉장한 능력을 갖춘것으로 묘사된다. 미션 임파서블이나 모범시민이 그 예이다.

 

그러나 영화 골든 슬럼버에서의 주인공은 무지하기 그지없다. 거대한 힘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로 묘사되는 것은 일련의 스릴러 영화들과 비슷하지만, 그는 무기력을 넘어서서, 무력하고 무지하다. 영화속 그는 세상물정 잘 모르는 어눌한 사람처럼 설정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앞에 닥쳐온 일들은, 그가 스스로 헤쳐나가기엔 벅찬것이였다. 어쨌거나 영화에서는 그가 어떻게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그의 친구들을 등장시킨다. 수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바로 히구치(타케우치 유코 분)이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주인공은 히구치의 도움으로, 그리고 '뒷길형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던 노인의 도움으로 하여 무사히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물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말이다. 주인공은 전적으로 자신의 친구들에게 의존하여 목숨을 건지게 되었는데, 우리는 여기서 이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핵심 질문인, '어떤 친구가 진정한 친구인가'라는 질문을 영화로부터 받게된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영화 골든 슬럼버를 통해 그 모범답안의 일부를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의 모범답안은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친구, 자신을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친구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골든 슬럼버에 나오는 히구치 역시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대학교때부터 쭉 친구사이였고, 연인 관계였기도 했던 그녀가 주인공을 전적으로 도와주는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그러나, 주인공을 도와줬던 한 노인이 '당신들이 그의 오랜 친구라면, 나는 당신의 최신 친구'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우리는 또 다른 고민에 봉착하게 된다.

 

히구치의 경우, 비록 대학교 졸업 후 서로 연락은 닿지 않았지만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그녀의 그런 전폭적인 도움은 '아무리 친구라도' 라는 생각이 들면서 손사레 칠수도 있지만,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 노인의 도움은, 그리고 스스로를 '친구'라고 묘사하는 그의 그러한 행동은 우리가 쉽사리 납득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이 두 사례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그리고 '진정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 잘했어요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 골든 슬럼버를 단순히 스릴러 영화의 프레임에 가두기엔 부족한 점이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영화가 그 프레임에 차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프레임이 영화를 모두 담기에는 모자르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인간 최후의 무기는 신뢰다'라는 것으로 주인공이 겪는 모든 고난을 해결해나간다는 것은 스릴러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이 주제를 바라본다면 보다 의미있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화가 본질적으로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은 무엇인가'였다면, 이러한 해결방법은 그에 대해 충분한 답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물론 앞서도 자세히 살펴봤지만, 이를 다른 말로 풀어본다면, 우정이라 하는것은 시간에 꼭 비례하는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함께 유년시절을 겪어왔던 친구들과는, 오랜 시간을 서로가 서로를 잊어 지냈다고 한들, 만난지 얼마 안돼 그 영겁의 시간을 빠르게 메워내고, 마치 어제까지도 만났던 사람처럼 다시 공감대를 형성한다. 우리는 이것을 '서로가 알고 지내온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는 이것에 대해 새로운 답을 던진다. 바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며 우리 자신에게 방어막을 치며, 가까이 다가오려는 사람을 경계하곤 한다. 그러나 유년시절을 더듬어보면, 우리에게는 그러한 방어막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의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때의 친구들이 바로 그렇고, 그래서 우리는 그때의 친구들과는 진정한 교감을 나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교감은, 서로가 서로를 더 신뢰하게 되는 밑바탕이 될 수 있었을테다. 그러한 신뢰가 기본이 되어, 우리는 오랜 시간 잊어왔던 친구를 다시 만나면,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두르고 있던 방어막은 어느새 해제되고 만다. 때문에 우리는 비록 오랜 시간 잊고 지냈다고 해도 금새 다시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예전에 방어막을 없앴던 기억이, 현재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히구치가 주인공인 아오야기(사카이 마사토 분)에게 많은 도움을 준것도 아마 그 때문일것이다. 물론 대학교때 친구이긴 하지만, 그때의 그들은 서로의 방어막을 없앤채 전적으로 신뢰하며 가깝게 지냈었고, 그것은 유년 시절을 함께하던 친구들과 같은 느낌이였을테다. 아오야기의 탈출에 도움을 줬던 노인 역시도, 비록 그의 최신 친구였지만,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었을테고, 때문에 그 노인 역시도 아오야기의 진정한 친구라고 표현할 수 있을테다.

 

 

아오야기는 자신의 수 많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도망치는데에 성공하지만, 끝내 자신의 얼굴을 고치고서는 정체를 숨기고 살 수 밖에 없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간신히 목숨만을 부지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결국 그는 넓은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믿는 그가 살아 있을거라고 믿는 그의 친구들과, 그가 버튼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른다는 사소한 행동 하나만으로도, 비록 그의 겉모습이 바뀌였지만 그를 곧바로 알아보는 친구가 있기에, 그가 이런 모습으로라도 살아가는 것은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을테다. 좋은 친구가 몇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칭하는 말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고, 바로 그 좋은 친구들이 그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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