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영화인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두 남녀가 특정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 결국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오늘날 까지도 많이 다뤄지고 있는 부분인데다가, 그 특성상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가 비슷비슷한 내용을 가져간다. 예컨대 우리가 드라마를 보며 항상 진부하다고 느끼는 출생의 비밀이나, 가족에 의한 연인관계의 갈등 등도 마찬가지로 그런 부류 중 하나일 테다.


이러한 것들을 통틀어서 클리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의외로 우리는 이 내용들이 진부하고, 숱하게 다뤄져 온 내용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클리셰에 열광하곤 한다. 신파극이나 치정극과 같이 새롭지 못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들은 의외로 높은 시청률을 구가한다는 점에서만 봐도 그렇다. 물론 요 근래의 드라마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한 방송사의 드라마 라인업에서는 항상 이러한 내용을 다룬 작품이 한두 개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나마 영화는 조금 나은 편이다. 매회 피드백이 이뤄지는 드라마와는 달리 한번 완성된 영화는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드라마 보다는 돈에 의해 좌우되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드라마는 애초에 상영관이 방송 삼사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독창성을 시험하는 데에 있어서 그 한계를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다. 태생적인 한계라고 해야 되나.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많은 인기를 얻는 대부분의 영화도 비슷한 포맷을 가지고 가는 것이 사실이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곧 각각의 영화에는 특정한 형식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오늘 포스트에서 다루고 있는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주인공인 백스터 버드(잭 레몬 분), 회사 인사권을 담당하는 쉘드레이크, 그리고 회사의 엘리베이터 걸인 큐블릭 프랜(셜리 매클레인 분), 이 세 명 사이의 관계에서 결국은 버드와 프랜이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이야기의 형태를 다루고 있다. 이 셋은 일반적인 삼각관계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고, 중심인물은 버드와 프랜,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쉘드레이크가 위치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쉘드레이크가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보다는 쉘드레이크와 프랜 사이에 버드가 위치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버드는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직장 상사들이 불륜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자신의 아파트를 빌려주는데(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란 제목은 이런 이유로 인해 정해진 것으로 보임) 여러 불륜 커플들 중 한 커플이 바로 쉘드레이크와 프랜이였기 때문이다.


버드는 그런 둘의 관계를 전혀 모른 채, 회사에서 엘리베이터 안내원으로 일하던 프랜의 모습에 한 눈에 반하게 된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시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러나 쉘드레이크는 유부남이었고, 크리스마스를 자신의 부인과 보내겠다는 말을 그에게 들은 프랜은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이 장면을 버드가 보고 프랜을 구하게 되고, 이를 통해 버드는 자신이 프랜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찬가지로 프랜 역시도 버드의 진심을 알게 되어 서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평범한 형태의 로맨틱 코미디이다.


오늘날의 그것과는 다른 영화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오늘날의 그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사실 다르다는 표현 보다는 영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만의 특색이 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대개의 로맨틱 코미디는, 물론 남녀 간의 사랑을 가볍게 그리지만 둘 사이의 갈등은 마지막에 폭발하는 감정을 위한 준비과정 정도로만 이해된다. 달리 나타낸다면 영화의 90분의 시간이 마지막 한 순간을 위해 영화가 흘러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정이 굉장히 절제되어 있는 모습이다. 쉽사리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살아갈 수 없는 대도시의 인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봐야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는 백스터와 큐블릭이 서로 사랑을 하게 됐는지, 아니면 그렇지 못했는지도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 물론 으레 짐작컨대 둘은 사랑에 빠졌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말이다. 또한 대개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두 남녀가 갈등을 해결하면서 더욱 성숙한 사랑을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지만, 이 역시도 오늘 다루고 있는 영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와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백스터와 큐블릭은 그저 서로가 호감을 느끼는 정도에만 위치하다가 영화의 끝에나 가서야 백스터가 고백을 하고, 그리고 막을 내리니 말이다.


때문에 사실 영화는 다소 단조롭고 지루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심심한 맛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오던 영화들이 자극적이고 강렬한 향과 맛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영화는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간이 잘 베어 담백한 맛이 나는 그런 영화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감정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있는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영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의 가장 큰 장점이다.


대도시속 사람들의 모습



여러 면을 살펴보면 영화 자체가 무거운 분위기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그러한 분위기로 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 그리고 백스터가 쉽사리 큐블릭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이유에서 우리는 대도시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가볍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백스터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들을 떠올려보자. 그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한 방법은, 그의 말을 빌려보자면 '아첨꾼'정도다. 자신이 감기에 걸려 힘든 와중에도 직장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아파트를 내주는 한편, 큐블릭이 자신의 상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도 한 수 접고 들어가기까지 한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면서까지 그 곳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끝없이 생존의 위협 속에 부딪히는 그의 삶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애석하게도 이는 백스터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곳에서 생을 이어가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일 테다. 40대 남성들의 주머니 속엔 항상 사표가 들어있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는 백스터의 모습이 더 크게 와 닿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The Apartment, 1960)



영화는 겉으로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랑과 현실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백스터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상사와 큐블릭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바로 단념하는 그의 모습과, 자살을 하려는 큐블릭을 구해내면서 까지도 자신의 솔직한 감정보다는 상사를 걱정하고 회사에서의 자신을 걱정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어느 하나를 분명하게 확신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그런 행동에서 연민과 함께 동질감을 느끼고, 그가 회사를 그만두는 모습에서는 쾌감을 느끼는 것일 테다.


아마 우리는 백스터처럼,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며 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곳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가,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큐블릭과 같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 가운데 나를 더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러나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고, 다만 그것을 선택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백스터가 시종일관 영화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만, 한번쯤은 용기를 내어 더 중요한 무언가를 쫓을 필요도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