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의 시대라며 자연과학, 또는 공학을 전공한 이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것이 어느덧 당연한 일이 되고 있고, 삼성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그와 정 반대 방향의 통섭도 요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개 후자보다는 전자의 경우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공학에서 요구되는 정도가 더 크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를 뒷받침 하는 예시로는 전자출석의 공학적 의미와 인문학적 의미를 비교하는 이야기가 자주 언급된다. 요악하자면 「전자출석은 출석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또는 수업의 만족도가 향상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실제로 그렇지 못했고, 결국 오늘날 전자출석을 이용하는 대학교는 극히 드물다.」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학하는 사람들끼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돌아보면 많은 경우 제시하는 개선방안들이 단순히 「얼마나 편리해지는가.」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조금만 꼬아서 생각해본다면, 예컨대 ATM 기계나 승차권 자동 발매기만 보더라도 공학자들이 보기에는 편리해지는 기계이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 이전에 사람과 마주하며 일을 처리하던 그 시절보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더욱 불편하다. 더불어 창구 직원과 간단하게 말을 건네던 여유마저 없어진 것을 보면, 과연 공학자가 쫓는 편리함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된다. 


다시 전자출석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전자출석은 분명히 편리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불편해진 시스템이며, 또한 출석의 의미를 단순히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머릿수를 세는 정도로만 이해했다는 것에서 더 큰 문제점이 출발한다. 예컨대 출석은 단순히 머릿수를 세는 것뿐만이 아니라 교수가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가 교감하며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전자출석은 애초에 그러한 모든 것들을 무시한 채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보았을 때 전자출석은 분명 효율적인 시스템이지만 그 외의 인문학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공학자들에게 더욱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편협적인 의미에서의 통섭을 이야기 한 것이지만, 이런 편협적인 시각에서도 과학과 인문학을 합친다는 것은 이처럼 어렵다. 책에서는 종교와 과학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인문학과 과학도 그 둘의 관계와 비슷한 성향을 띄고 있다. 애초에 합치려고 한다고 해서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인문학은 「사람을 우선」해서 그 주변의 것들을 해석하려고 하지만 과학의 경우는 「자연의 일부로써의 사람」을 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둘은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합쳐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를 들기 위해서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책의 중심 뼈대이기도 한 혈연 선택(포괄 적합도)과 집단 선택을 이야기해보자. 혈연 선택은 현재까지의 진화 생물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이론 중 하나인데,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의 진화론은 한 개체가 다음 세대로의 유전 형질 전달을 목적으로 생존하는 것에만 중점을 뒀기 때문에 특정 개체가 다른 개체를 위해 이타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혈연 선택은 '개체뿐만 아니라 혈연의 번식 성공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즉, 한 개체의 희생을 통해 더 많은 혈연의 생존이 보장된다면, 즉 유전 형질의 전달이 용이하다면 어떤 개체는 혈연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혈연 선택은 해밀턴의 법칙으로 설명되는데, 이 해밀턴의 법칙은 rB > C로 주어진다. 이 때 C는 비용, r은 유전적 연관도, B는 이득이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한 개체군이 4명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하자. 만약 3명의 형제가 물에 빠졌을 때, 남은 1명의 형제는 이들을 구하러 물에 들어가는 이타적인 선택을 할까? 해밀턴의 법칙에 따르면 '하게 된다'. 형제는 평균적으로 50%의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이를 해밀턴의 법칙에 의해 계산해보면 r = 0.5, C = 4, B = 4 * 3 이므로 6 > 4가 되어 남은 한명의 형제는 세 명의 형제를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자신이 죽고 대신 세 명의 형제를 살릴 경우 유전 형질이 더 잘 보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을, 동물에게 적용한다는 것도 조금 아이러니 하지만 인간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이러니하다. 아무런 연고 없는 사람을 위해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고, 물속에 뛰어들면서까지 구하는 그러한 이타적인 것을 설명하기에 혈연 선택은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류의 문명을 설명한다는 것은, 책의 제목처럼 「지구의 정복자」 인간이 어디서 왔고, 무엇이고, 또 어디로 가는지를 설명하기란 턱없이 모자라다. 그래서 책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새로운 설명을 하게 된다. 바로 집단 선택이다.


집단 선택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떤 개체는 항상 집단 형질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개별 형질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압을 외부로부터 받게 된다. 즉 개인과 집단의 가치를 놓고 항상 저울질하게 된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경쟁해왔으며,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집단이 섞여나가는 과정을 꾸준히 거치며 이로써 집단의 조성이 불안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달리 표현하면 집단이 곧 혈연이 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인간은 집단 선택의 산물인 명예, 미덕, 의무를 쫓을 것인지 아니면 개체 선택의 산물인 이기심, 소심함, 위선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압력을 계속하여 받아왔다. 그러나 지구의 역사에서 항상 개체 선택보다는 집단 선택이 승리했으며, 인간도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서는 집단 선택의 선택압이 보다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다른 사회적 동물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책의 내용은 곧 이에 대한 근거라고 봐도 좋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진사회성 곤충의 사례나, 집단주의적 성향이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이라는 해석등도 결국은 이러한 집단 선택을 설명하기 위한 부가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집단 선택은 생물학이라는 느낌이 들기 보다는 인문학적인 느낌, 즉 철학이라는 느낌이 오히려 더 강하다. 그 때문에 집단 선택설이 인문학을 품을 수 있는 것이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진화 생물학계에서 지금까지 집단 선택에 대해서 반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과학적인 논거를 살펴본다면, 개체 선택이 훨씬 더 매력적이며 설득적이다.」 단 하나의 수식으로 결정되는 것만큼 과학에서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러나 에드워드 윌슨은, 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을 책 「지구의 정복자」에서 훌륭하게 성공해냈다. 물론 여전히 본질에 접근한 다기 보다는 겉만 핥고 있다는 피상적인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타주의의 유래를 해밀턴의 법칙에서 찾기에는 그 외에 진사회성 동물이 공유하는 것, 그리고 인간임을 식별할 수 있는 형질들을 모두 설명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통섭적으로 설명해 낼 수 있는 유일한 해결방안은 집단 선택이 유일할 것이며, 에드워드 윌슨은 그 말을 책 전체에서 내내 열심히 강변하고 있다. 이 것 외에 다른 답은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자연선택의 단위가 개체냐, 아니면 집단이냐」는 다윈 때부터 지금까지 끝나지 않고 이어져 오는 진화론의 가장 큰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다윈도 그의 저서 「인간의 유래」에서 '한 부족 내에서 고결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유리한 점이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고결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이 많은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언제나 부족들 간에는 하나의 부족이 다른 부족을 대체해가는 과정이 진행되므로,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도덕성이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므로 높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차지하는 수적 비중이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다.'고 이야기 했던 것이 이 논쟁의 출발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래서 이 짧은 서평으로 이 장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도 불가능하며, 또한 책 「지구의 정복자」 단 한 권으로, 그리고 단 한 번의 독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집단 선택과 혈연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날 집단 선택설의 선봉장이기도 한 에드워드 윌슨이 이야기 하는 집단 선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 측면에서도 이 책은 나름의 의의를 갖는다. 인문학을 포용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것이야 말로 집단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지구의 정복자 - 8점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사이언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