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여러 일들을 평소에 겪었던 경험에 기인하여 빠르게 해결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비가 오는 날 빨래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빨래를 해보지 않더라도 되도록 비오는 날은 피할 것이고, 우유를 마시고 속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면 우유를 꼭 먹어보지 않더라도 우유를 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경향은 복잡한 여러 사건들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하는 이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하기도 하다. 예컨대 우유를 먹고 속이 좋지 않았던 이유가 실제로는 우유 때문이 아니었다면 어떨까? 이는 우리의 경험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조작되고 편집되어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고정관념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 실제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생수’일 것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수돗물과 식수를 구분 짓고는 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수돗물은 음용수로써 부적합하다는 고정관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꿔보겠다며 2007년 야심차게 발표한 생수 브랜드인 ‘아리수’는 5천억 원이라는 사업비가 투자되었음에도 아리수의 판매는 고사하고 오히려 생수판매량만 2011년 350만 톤으로 2007년 대비 100만 톤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정수기 보급률은 58%까지 증가했다. 그 만큼 한번 만들어진 관념은 바꿔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우리가 수돗물을 바로 마시기를 꺼려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취수원의 오염, 수돗물 특유의 냄새, 낡은 배관으로 공급되는 특성 등 수돗물을 신뢰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들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부분은 수돗물에 대한 의심보다는, ‘과연 수돗물의 대안으로써 생수는 적합한 것인가’가 돼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으로써 책 <생수, 그 치명적 유혹>의 저자 피터 H. 글렉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의 그런 대답은 크게 두 가지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 하나는 생수나 수돗물이나 사실 별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수에 적용되는 수질기준이 수돗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심지어는 똑같은 경우가 많았다. 이는 성분상으로는 수돗물이나 생수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최대 하루에 12번도 검사되는 수돗물에 비해 주나 월, 또는 분기별로 수질검사를 받는 생수의 경우 오히려 수돗물보다 더 위험 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생수를 선호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는 물의 맛이나 깨끗함의 이미지와 같은 것들이 대개 생수 제조사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생수의 취수원이 어딘지 불명확한곳이 많으며, 심한경우는 수돗물의 취수원과 동일한 곳도 있다고 지적한다. 즉, 시베리아나 북극의 모습을 생수 전면에 사용하는 것은 실제 생수의 취수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깨끗하고 맑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또한 많은 경우 물의 맛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실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의 맛도 결국은 제조사에 의해 생겨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의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수돗물과 생수의 논쟁에 담겨있는 이념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궁핍과 부유,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이다. 이러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수돗물은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공급하는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 생수의 경우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구매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만약 수돗물의 대안이 생수라는 생각이 많아질수록 수돗물의 안전성은 더더욱 담보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생수에 충분히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안전한 물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저자는 생수에 소비할 돈을 수돗물에 사용하여 수돗물의 안전성을 높이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물 부족이 한층 더 심해지고 있고, 더군다나 여전히 안전한 수도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이들을 생각해본다면 작금의 이러한 태도는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수돗물을 바로 마시라고 한다면, 누군들 꺼려지기 마련이다. 설사 책을 읽었다고 해도, 책을 읽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궁극적인 해결법, 공공재로서의 수도의 지위를 회복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꼭 가야하는 길인 것은 분명하다.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생수, 그 치명적 유혹 - 피터 H. 글렉 지음, 환경운동연합 옮김/추수밭(청림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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