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연계 고등학생들, 그리고 이공계 전공자들이 그렇겠지만 그들과 수학은 애증의 관계다. 배우고 익혀 나가는 것이 분명 어렵고 난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제쳐뒀다간 다른 과목 모두 영향을 받는다. 이공계 전공과목의 상당수는 모두 수학으로 쓰여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수학을 곧 잘 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작 수학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이학을 전공하지 않는 이상은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그런데, 그러한 경우에서 예외인 경우도 한 번 존재하긴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을까. 다른 과목의 성적은 썩 뛰어나진 않았지만 수학과 과학만큼은 그 누구보다 잘해내는 친구였고, 그 중에서도 수학실력은 수준급 이였다. 매번 모의고사의 수리영역이 끝날 때쯤, 그 친구의 책상 주위에는 답을 맞춰보고자 하는 아이들로 북적였으니.


그랬기에 이공계로 진학하기 위해서 준비하고는 있지만 수학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내가 그 친구와 어느 수준 이상으로 가까워진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필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구와 내 사이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영화였다. 그 친구는 특히 한 영화를 수십 번도 더 봤다며 으레 자랑하고는 했었는데, 그 영화가 바로 <굿 윌 헌팅>이었다. 물론 나 역시도 그 영화를 봤지만, 그 친구는 수학을 원체 좋아하다 보니 주의 깊게 본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내가 윌 헌팅이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주목했다면, 그 친구는 수학을 좋아했던 윌 헌팅의 모습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었다. 같은 영화인데도 이렇게 까지 보는 시각이 차이가 있을까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통해서도 수학을 배워나갈 수 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사실 수학을 다룬 영화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굿 윌 헌팅>도 그렇고, 케빈 스페이시가 수학과 교수로 출연하는 영화 <21>도 수학을 통해 블랙잭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아예 대놓고 수학을 영화 전면에 내세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영화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영화를 보면서, 앞선 문단에서 필자가 굿 윌 헌팅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받겠지만 필자의 친구와 같은 시선으로는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영화 속에 담겨있는 수학의 의미를 탐구해보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고, 수학을 재밌고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책  <시네마 수학 : 스토리텔링 수학, 영화를 만나다>의 저자 이광연이 바로 필자의 친구와 같은 시선으로 이러한 영화들을 다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스토리 텔링 수학, 영화로 수학을 만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초중고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 내용이 개편되었거나, 또는 그럴 예정에 있다. 특히 초등학교 수학의 경우, 수학을 단순한 학문으로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용한 교과서로의 개편이 계획되어 있다. 대부분이 학생들이 수학을 왜 배우는지, 그리고 배워서 어느 곳에 사용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을 감안해봤을 때, 실생활과 접목하여 수학적 지식을 전달해준다는 취지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를 고취시켜줄 수 있을 뿐더러 추상적인 수학적 개념을 학생들이 이해하는 것이 보다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까지 수학에 스토리텔링 기법이 적용되는 사례는 대개 초등학생들의 경우로만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생 이상의 연령층이, 아무리 수학을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고 한들 결국은 추상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 수학적 개념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그 정도의 나이가 되면 수학을 왜 배워야 되는지에 대해 물음표를 달지 않고 그저 필요에 의해 배울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연령층도 마찬가지로, 이 수학을 배우면서도 '내가 왜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사칙연산만 잘 하면 사는 데에 어려움이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생각은, 사실상 수학은 실생활에서 폭 넓게 적용되고 있음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수학을 멀리하고, 또한 필요가 느껴지지 않으면 수학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려고 한다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만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 수학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거나, 또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쉽게 수학을 찾아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수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높은 연령층에게도 수학에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용하는 것은 상당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는 책 <시네마 수학>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앞선 단락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책 <시네마 수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영화를 그려낸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도 함께 다루고는 있지만, 그보다는 영화 속에 등장하고 있는, 또는 관심 받지 못한 채 한편에 숨어있던 수학을 조용히 불러오면서 '수학은 이런 곳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영화를 보며 한번쯤은 궁금해봤을 것들, 예컨대 '저게 실제로도 가능할까?'와 같은 것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수학'은 어렵지만, '영화'는 쉽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기법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수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그리고 어느 곳에 사용되는지를 확인함으로써 수학을 학습하는 사람에게 수학에 대한 흥미를 가져다 준다는 데에 있다. 또한 추상적 개념의 이해를 돕는다는 장점도 있는데, 다만 이는 다소 낮은 수준의 수학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지, 높은 수준의 수학에서는 이를 적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이는 마찬가지로 책 <시네마 수학>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책은 난해하고 복잡한 수학적 개념을 최대한 글로 풀어 설명하여 비전공자인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수학적인 배경 지식이 없는 경우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챕터를 살펴보면 극한과 복소수에 대한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만약 이러한 내용을 전혀 접해보지 못했다면, 책을 읽더라도 쉽게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수학적 개념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 부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한다고 봐도 좋다. 사실상 다른 챕터에서는 이러한 수학적 개념을 수식으로써 설명하려 하지 않고, 대신 최대한 말로 쉽게 풀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런 예를 한번 찾아보면, 책 속에서 영화 트로이를 소개하며 설명하고 있는 제논의 역설은, 고등학교 수학 내용 중 무한급수 부분을 이해하고 있다면 수식으로써도 쉽게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책은 굳이 수식을 통해 이를 증명하거나 보여주지 않고 간단하게 설명해내고 있다. 또한 얼마 전에 본 블로그에서 다뤘었던 몬티홀 문제 역시도 영화 21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고 있다.


수학만이 아니라 '영화'도



쭉 수학얘기만 언급했기 때문에 이 책이 단순한 수학책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책의 취지 자체가 영화를 통해 수학을 이해하자는 부분 이다보니 수학이 메인 토픽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화의 내용이나 또는 영화의 소소한 뒷이야기들도 함께 전해주면서, 단순히 수학적 내용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해리포터 속에 나오는 주문들을 설명해놓은 부분이 있는가 하면(p.70), 시간여행에 대한 영화들을 살펴보고 있는 부분도 있고(p. 117), 소개하고 있는 영화의 원작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해주는 부분(p. 172)도 있다. 단순한 수학책이 아니라 나도 나름은 '영화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다이하드3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설명으로, 해당 영화의 감독인 존 멕티어넌 감독의 '폐쇄 공간 연출'에 대해서 소개해놓은 부분이다. 아무래도 이 책이 국내 최초로 수학교수와 문화평론가가 동시에 집필하다 보니 수학과 영화 두 분야에서 어느 정도 깊이 있는 글들도 책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수학이 어렵니? 영화를 봐!



그러나 두 가지 내용을 모두 다루려다 보니 일부는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심도 깊게 다루지 못하고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 책의 목적을 '수학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또는 '수학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살펴보고자 했다면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유용하게 읽힐 수 있을 테다. 특히 중고등학생처럼 이제 막 수학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나이라면,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만들어줄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는 '수학자가 바라보는 영화 속 세상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지'가 궁금했던 영화팬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더군다나 책 속에서 다루고 있는 영화들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한번쯤은 봤을 그런 익숙한 영화들을 다루고 있으니, 내가 봤던 영화와 저자가 본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겠다.


시네마 수학
이광연.김봉석 지음/투비북스

수학 교수와 영화 평론가가 최초로 공동 집필한, 영화에 대한 수학적 해설서이다. 다양한 영화의 장면 뒤에 숨은 수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영화와 어렵게만 느끼는 수학을 잘 융합하여...



ps/ 투비북스라는 출판사 이름이 생소해서 찾아보니 1인 출판사라고 합니다.

출판진흥원으로부터 출판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들어진 책이 <시네마 수학> 이라고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