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진보학계의 원로학자이자, 한 때 안철수 의원의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직을 역임했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런 말을 남긴바 있다. "우리 정치에서는 칼 마르크스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더 필요하다" 진보라는 정치적 사상을 단순히 시민계급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한정 짓는 것은 부적절하겠지만, 19세기 이후 진보의 맥이 대개의 경우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내용대로 읽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국내 진보인사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최장집 교수가 많은 부분에서 진보와 정 반대 노선으로 해석되는 마키아벨리를 마르크스보다 더 우선순위에 둔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일 수밖에 없다. 그런 그는 대체 왜 마키아벨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까? 마키아벨리의 대표 저서인 <군주론>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군주론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



군주론은 군주가 권력을 어떻게 획득하는지, 그리고 획득한 권력은 어떻게 유지시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다만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군주론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두 악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군주의 덕목들이 군주론에서는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 될 수도 있다. 다음의 문장이 군주론의 그러한 성격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덕으로 생각되는 행동이 파멸을 초래할 수 있는 반면, 악덕으로 간주되는 행동이 군주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번영을 가져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군주론은 이처럼 인간의 악을 전제로 함과 동시에 ‘수단의 도덕성은 이를 통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 따라 결정되어 진다’는 결과론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군주에게 잔인함과 인자함,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이 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좋은가’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17장이다. 책은 “지나친 자비를 베풀어 무질서를 낳아 살인과 약탈이 자행되도록 하는 군주보다, 소수에게 가혹 행위를 함으로써 기강을 바로잡는 군주가 훨씬 더 자비롭다”라고 이야기 하며, 수단이 다소 불합리하고 부도덕적이라 해도 그 수단으로 말미암아 보다 나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 수단은 얼마든지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군주론은 이 두 가지 내용 외에도 다양한 내용들을 함께 담고 있지만, 그 내용들도 사실상 군주론의 큰 줄기인 인간의 악, 그리고 군주의 행동은 결과로써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로 설명되어 진다. 때문에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불리는 군주론의 내용들은 비인간적이면서 잔인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러한 시선 때문에 한때 군주론은 교황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마키아벨리는 틀렸다"라며 <반군주론>이라는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 전체적인 내용이 이러하다 보니, 최장집 교수가 왜 마키아벨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군주론을 알아갈수록 해결되기는커녕 더 커져가기만 한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군주론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판단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기준에서 바라봐야지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그 당대의 정치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 시절의 정치는 현실적인 요소는 상당부분 배제된 채 종교나 도덕의 시선을 빌려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제자백가 시절의 정치사상들도 한비자를 제외하고서는 공자의 인(仁), 묵자의 겸애(兼愛)등 대부분의 사상들이 결국은 선(善)이라는 도덕적 가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이 사실이며, 이는 마키아벨리가 살아가던 그 때에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관대함이나 인자함과 같은 도덕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은 전형적인 통치 철학만이 존재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종교와 도덕에 의해 포장되어 있던 정치를 현실세계의 것으로 가져온다. 정치도 결국은 책이나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 속에서 이뤄진다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말 하지 못했던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종교와 도덕적 가치로 서술되어 지던 종래의 정치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던 반면에, 군주론에서의 정치는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로부터 설명되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이 비단 군주론에서만 언급되는 내용은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보다 더 오래된 고서인 중국의 십팔사략과 같은 곳에서도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사례를 토대로 군주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이 단순히 도덕적 가치에만 함몰되는 경우를 경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어디까지나 도덕적인 행동이라는 것의 정의를 다시 하기위해 언급되는 사례이지 군주론처럼 “현명한 군주가 시민들을 결속시키고 계속적으로 충성을 바치게 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와 같이 부도덕한 행동도 목적이 정당하다면 용인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다루고자 인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외의 다른 고서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인용되는 경우는 있지만 마찬가지로 군주론과 같은 목적을 위해 언급되고 있지는 않다.


다양한 의미로 읽히는 군주론



이렇듯,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상에 사로잡혀 무의미한 논의만이 오가던 정치를 처음으로 현실 세계의 시선을 통해 그려냈다는 점에서 정치사적인 의의를 갖는다. 또한 군주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러 권고들, 그리고 이 권고를 무시함으로써 일어난 사건들이 실제 우리 역사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마키아벨리가 인간과 정치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어딘가 모를 불편함도 함께 남아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본래 악하다’고 판단한 군주론의 진단은 상당부분 현실과 일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이런 방법을 통해 직접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유쾌하게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군주론은 그 태생부터 숱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었다고 봐야겠다.


인간은 자연스레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피하기 마련이고, 군주론이 나오던 그 당시의 정치는 여전히 성역화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군주론은 처음 세상에 나올 때, 군주론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과 목적지보다는 그곳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주목을 받아 역사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점점 군주론은 가치를 인정받아가며 다양하게 해석됨으로써 비단 정치뿐만이 아니라 그 외의 여러 분야에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이는 군주론이 그려내고 있는 내용들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부터 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우리는 군주론의 내용들을 여러 자기계발서 에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특히 리더십을 다룬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몇 몇 책에서는 군주론을 바람직한 리더십의 전형으로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나 역시도 군주론을 처음 접할 때는 정치이론서의 군주론이 아니라 리더십을 다룬 책으로써의 군주론으로 소개받았었다.


하지만 군주론이 아무리 오늘날 많이 읽히고, 또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하여도 ‘군주론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 오늘날의 사회에도 적용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는 것이 어렵다. 애초에 군주론은 군주가 국가를 통치하는 형태인 군주정의 경우에 국한하여 서술되고 있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가 공화정 형태를 띠고 있는 현재에 빗대어 이를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주론의 전체적인 맥락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보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는 더욱 더 분명해진다.


오늘날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한 '군주론'



이유는 간단하다. 군주론이 인간의 이기심을 기본 전제로 삼고 있듯이, 오늘날 경제학의 출발점인 국부론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군주론에서의 이기심은 통제하거나 억압해야 할 인간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있지만, 국부론에서의 이기심은 경제 활동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필요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차이는 존재한다. 그러한 전제 속에서 군주론은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거나, 또는 상황을 낙관하기 보다는 여우와 사자의 자세를 취해가며 끈임 없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투쟁해 나가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누군가를 의심 없이 믿거나, 또는 아무런 노력이 없이는 치열한 전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도, 그리고 군주론도 가지고 있는 결함은 자칫 도덕 따위는 의미가 없다는 지나친 현실주의로 대두될 우려가 있다는 부분 이다. 자본주의의 경우는 경쟁 속에서 도태된 자들의 처우에 대한 논쟁에서 이미 그러한 문제점이 보여 지고 있으며, 군주론의 경우는 “인간이란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든가, 반대로 냉혹하게 무시해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마찬가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둘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러한 문제점들은 사실상 목표로써 삼을법한 이상적인 세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이상에 대한 부정은 현실을 살아가는 목표의 실종으로까지 확대될 우려가 있다. 이는 결국 국부론과 군주론이 단순한 생존만을 인간의 삶에 있어서 유일한 목표라고 이야기하는, 아무런 의미 없는 니힐리즘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부론과 군주론을 지나친 현실주의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는 대개 자본주의가 냉정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말하기를 “개인의 경제적 이기심은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라며 도덕적 가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군주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요새는 시민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라며 군주는 무릇 시민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기존의 도덕적 통치 철학을 다시금 강조했다. 때문에 이들을 단순히 현실적이라는 기준만 가지고서는 정확히 평가할 수 없을뿐더러, 또한 그렇게 해석할 근거도, 이유도 없다. 결국 이들이 지나친 현실주의를 그려내고 있다는 우려는 잘못된 해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군주론 : 종교와 도덕에 함몰돼있던 정치를 현실세계로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군주론을 통해 메디치가의 인정을 받아 공직으로의 복귀를 꿈꿨지만 결국 실패했고, 그 후 공화주의자들에게 헌정된 로마사논고를 통해서는 군주제를 비난하고 공화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그는 메디치가의 몰락 이후 공화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은 이후에도 이전에 남긴 군주론 때문에 공직으로 복귀 하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그가 군주론에서 “우유부단한 군주는 현재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언제나 중립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파멸의 원인이 되고 결국 파멸하게 된다.”라고 이야기 했던 것처럼, 사실은 그가 공화주의자 이면서도 군주론을 써내려갔기 때문에 다가온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불운한 시기를 함께했던 군주론은 시대가 흘러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고, 어느덧 근대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저작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러한 긍정적인 평가와는 반대로, 독재자를 비호하는 논리에 이용될 수 있다거나 또는 인간을 너무나 몰인정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군주론이 처음으로 종교와 도덕으로부터 정치를 구분하여 현실세계의 시선으로 그려내고자 했던 시도는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며, 그의 그러한 시도는 무의미한 허례의식에 목메어 국가를 올바르게 이끌어 가지 못했던 군주에 대한 일갈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현실만을 추구하는 것도 공허하지만, 현실이 부재된 이상을 좇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로 공허한 것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장집 교수가 마르크스보다 마키아벨리를 더 우선순위에 놓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더 이상 마르크스로 대변되는 이론과 이상 속에 사로잡혀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마키아벨리의 이야기처럼 ‘현실 속에서의 정치’를 하라는 경고인 것이다. 


비록 군주론은 어디까지나 군주정 하의 군주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그리고 우리 삶속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종교와 도덕이라는 허상에 갇혀 시민들을 괴롭히는 것 보다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보다 나은 시민들의 삶을 보장해주는 편이 낫다’는 그의 실용주의적 태도는 한 번쯤은 곰곰이 성찰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 일 것이다.


바티칸의 금서 군주론 - 10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권혁 옮김/돋을새김

근대 정치학의 초석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559년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오를 만큼 많은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