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은 대단하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얼음 결정의 사진을 많이들 보여준다. 사랑이나 감사라는 긍정적인 단어를 들려준 얼음결정의 경우는 그 모양이 아름답고, 부정적인 단어와 음악을 들려준 얼음결정은 흉측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대체의학을 전공한 에모토 마사루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다뤄진 내용인데, 책 이름은 모르다고 치더라도 그 내용과 사진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나름 '과학'을 표방한 이 책은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한 대학기자는 '이런 사이비 과학이 설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왜 침묵하고 있느냐'라며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한바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과학자들이 일일이 대꾸해준다는 것도 사실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얼마 후 책 <과학콘서트>로 더 많이 알려진 정재승교수가 '과학계의 황홀한 사기극'이라며 직설적으로 비판하기에 이른다.[URL]

 

그러자 해당 책을 발간한 '나무심는사람’에서는 '정 교수야말로 과학적 근거 없이 책의 내용을 부정하고 있다'라며 반박한다. 책의 내용을 부정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이야기였다.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내라'는 식이다. 얼핏 보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 경우에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측은 정재승 교수가 아니라 출판사이다.

 

설득과 논쟁, 말이 중요한 오늘날

 

 

강한 힘이 그 옛날의 필수적인 생존요소였다면 오늘날에는 다른 사람을 잘 설득하고 말을 잘 하는 것이 사회생활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지만 대개의 처세술이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설득법은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주며 나의 요구를 그 사이에 살짝 끼워 넣는 방법일 테다. 책 <설득의 심리학>에서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상호성의 법칙'과 '호감의 법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단 설득을 넘어서서 사내이든 교내이든 많은 사람과 토론을 나누며, 상대방과의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어디까지나 '논쟁'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이기거나, 나의 편으로 데려오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다. 전혀 상반되는 주장을 할 때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의견의 양보를 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라는 것은 최소한 상대보다 내 자신이 조금이나마 유리하게 상황을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 할 테다.

 

그런 논쟁은 사실 자주 이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논쟁을 자신의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가들이 그럴 테고, 신문기자들이 그럴 테다. 하지만 저자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변호사'를 선택했다. 그는 논쟁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하필 변호사를 선택했을까?

 

'논리'는 기술적인 것에 앞서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그저 남을 이기기 위한 논리가 아닌 건설적인 논쟁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설명할 것이라고 밝힌다. 그런 그는 그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 역지사지의 원칙, 근거 제시의 원칙 + 근거 확인의 원칙, 입증의 책임 원칙 + 입증의 권리 원칙', 마지막으로 '논점 일탈 금지의 원칙'을 꼽는다. 저자가 변호사를 선택한 것은 변호사만이 유일하게 법정에 서기전, 무죄이건 유죄이건 간에 자신의 의뢰인을 자비롭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 저자는 대놓고 '이 책에서는 무조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진 않으니 그것을 알고 싶다면 다른 책을 찾아봐라'며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논리'는 딱딱한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고자 하는, 논쟁에 임하려는 그러한 마음자세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사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논리의 빈틈을 찾아낼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말도 귀담아 들으려는 선의의 시도가 곧 논리의 빈틈을 찾아 논쟁에서 이긴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꼭 이기고야 말겠다'라는 태도로 전의에 불타 논쟁에 참여하는 그들이 듣노라면 실망스러운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모든 논리는 4가지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앞선 문단에서 건설적인 논쟁에 필요한 4가지 원칙에 대해서 언급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여러 논리의 오류, 수많은 판례와 사건들을 이 4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는 대부분 변호사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장면과 함께 설명하고 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3년 전 무한도전에서는 무한도전 멤버간의 MT에서 길이 방뇨한 것과 관련하여 가상의 모의 법정을 방송했던 바 있다. 당시 유재석측 변호사였던 장진영 변호사는 길 측 증인으로 나온 이효리에게 유재석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증언을 추궁하고, 이를 토대로 '이효리는 유재석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의 증언은 객관적이라 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는 앞선 4가지 원칙 중 '근거 제시의 원칙 + 근거 확인의 원칙'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의 증언이 객관적이지 않은 단순한 인신공격임을 부각시킴으로써 길 측 증인의 증언은 '근거'로써 부적절 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법정을 다룬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으로 더 간단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가령 한 남자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자. 이 사건을 맡게 된 검사는 법정에 서서 배심원들에게 이 살인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고 잔인하게 이뤄졌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그러자 변호사는 판사에게 '지금 검사는 사건과 무관한 내용을 배심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이는 '논점 일탈 금지의 원칙'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 살인이 얼마나 잔인하게 이뤄졌는지는 판사가 양형을 하는 기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의 유/무죄의 기준은 되지 않는다.

 

어렵지 않은 논리, 꼭 알아야 하는 논리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장재승 교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장재승은 '언어와 얼음 결정은 관계가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라며 밝혔고, 출판사측은 '증거를 대보라'라고 반박했다. 그 반박에 장재승 교수는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라고 말할 게 아니라 맞는다는 걸 입증해야 올바른 과학'이라며 응수했다.[URL] 입증의 책임은 '먼저 주장한 쪽, 또는 상식과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쪽이'져야 하는 것이 맞기 때문에 입증의 책임은 장재승 교수가 아니라 출판사, 그리고 책의 저자에게 있는 것이 올바른 이야기이다.

 

이 처럼 논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논리와 관련된 서적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본다면 없다거나, 있어도 어린 시절 읽었던 '논리야 놀자'정도이지 않을까 한다. 논리력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임에도 논리력을 기르는데에 소홀하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사실이며, 때문에 어떤 책이라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나 쉽게 접할만한 책이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경우라면 변호사 논증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변호사들의 이야기로 논리를 설명하고 있고, 실제의 사례들을 글의 군데군데에 삽입해놓아 흥미 있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다만, 국가보안법이나 광우병 사태와 관련한 내용들도 약간씩 다루고 있어 해당 사안들에 특정한 의견을 가지고 있거나 언급자체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면 다소 거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부분은 지나치고 책을 읽어나가도 되기에 크게 영향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 논증법 - 6점

최훈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생활의 단면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사례와 학문적인 연구 성과가 탄탄하게 반영된 글쓰기는 설득력을 갖추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논증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사실 사람들은 논증을 모르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