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아마 부정적인 느낌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런 느낌으로는 아마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라든지, 기계의 부속품 수준으로 격하된 인간의 가치 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일 테다. 오늘날에는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이 대두되면서 자본주의라는 미명아래에 인권이 탄압당하는 일은 많이 찾아볼 수 없지만 금권만능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이면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초기 자본주의와 오늘날 자본주의를 비교하며, 자본주의는 본래 인간을 인간답게 용인하지 않는 체제이므로 외부의 힘을 통해 그 수준을 억누를 필요가 있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한다.'라는 곳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알게 된다면 아마 납득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의 창시자격으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경제활동은 개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개인의 경제적 이기심은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라는 단서조항을 붙여 놓았다. 그는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가 국민과 국가를 부유하게 한다고 믿었으나, 개인의 과도한 이기심은 항상 경계해왔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이기심은 사회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에는 틀림이 없지만 자본주의가 처음 탄생할 당시의 그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자본주의를 통해 사회 전체의 부는 증가했지만

 

 

자본주의가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오면서, 그리고 동서간의 대결이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이 나면서, 이를 경제체제로 채택하고 있던 상당수 국가들은 더 많은 부를 축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의 절대적인 부의 양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나, 그 만큼 소득 분배에 있어서 불균형은 더 심해진 상태이다. 미국의 경우를 살펴본다면, 2005 ~ 2010년 사이에 소득 상위 10%의 근로자의 연봉은 약 15% 증가한데 비해 하위 10%의 경우에는 동기간에 약 1% 정도밖에 상승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OECD국가 중 7번째로 소득불균형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URL]

 

금융위기 이후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빌게이츠는, 마이크로스프트사에서 은퇴하기로 선언한 후 맞은 2008년 다보스 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부자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하루 1달러 이하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10억 이상의 빈곤 인구를 도울 방법을 찾자. 우리가 더욱 창조적인 자본주의를 개발할 수 있을 때 시장의 힘을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빌게이츠가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들고 나온 것은 2007년 하버드대학 졸업식 축사 때였지만 그는 2008년에 이를 다시 언급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사회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는 것에 혁혁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나 소득의 불균형과 불평등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고, 이는 새로운 개념의 자본주의를 통해 극복해 나가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발언의 핵심 내용이다. 처음에 자본주의가 출발하게 된 이유를 곱씹어 봄으로써 작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자는 것이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개인 간 이해관계에만 국한되어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그런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는 이유로 책의 저자 아마티아 센은 '현재의 자본주의는 개인간의 이해관계에만 국한되어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버스에서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는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이 경우는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먼저 도덕적인 측면에서 접근해볼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주의는 그가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그가 앉아서 갔을 때의 효용 + 할아버지가 서서 감으로써의 고통)의 값이 (할아버지가 앉아서 갔을 때의 효용 + 그가 서서 갔을 때의 고통)보다 작기 때문에, 후자가 사회적인 측면에서 이익이기에 그런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형식으로 해석한다. 공리주의에 입각한 설명이다. 그렇지만 이런 설명에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도덕성의 측면이 결여되어있다. 그가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행동 자체가 그에게 고통이 아닌 하나의 효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예를 하나 또 들어보자. 놀부는 사과를 10개를 가지고 있고, 흥부는 사과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흥부가 사과를 가지려면 놀부에게 사과를 뺏어와야만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놀부에게는 효용의 감소가 일어난다. 오늘날 자본주의로 이 상황을 설명한다면 놀부가 흥부에게 사과를 나눠줌으로써(흥부가 놀부의 사과를 뺏음으로써) 파레토 최적의 상태가 깨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흥부가 사과 10개를 가지고 있고, 놀부는 사과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착한 흥부는 형인 놀부에게 사과를 하나 나눠줬고, 놀부는 그 사과 하나를 받았다. 이 경우에 착한 흥부는 놀부에게 사과를 나눠줌으로써 실질적인 부의 감소는 있었으나 자신의 기분이 더 좋아짐으로써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으므로 효용이 증가한 것이며, 놀부 역시도 없던 사과가 생겼으니 효용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는 이러한 현상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같은 재화라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능력은 다르다

 

 

작금의 체제는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사안들을 단순히 개인 간의 이해관계에만 국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앞선 단락에서 언급했다.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사회 모든 사안들을 물질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했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오늘날의 현실 역시도 소득 불균형과 빈곤을 단순히 '재화의 가득성 부재 정도'로만 인식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비단 재화가 있느냐 없느냐로 인식할 문제가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재화의 '향수 능력'이 있느냐 부족 하느냐 까지로 확장시킨다.

 

예를 들기 위해, 집에 차가 한대 있다고 하자. 주 5일제 근무로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차로 통근도 할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으며 자녀에게 운전연습도 시켜줄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일하는 데에 바빠 여유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 차로 단지 통근밖에 할 수 없다. 똑같은 재화인 '차'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두 사람이 이용하는 결과,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효용의 크기는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서로가 이 재화를 '향수'할 수 있는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빈곤의 조건을 기존의 '재화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재화를 향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도 포함시킴으로써 보다 폭 넓게 설명한다. 즉, 빈곤은 얼마큼의 재화가 있느냐라는 기존의 범위와 함께 그 재화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 교육, 의료서비스 등 사회 총체적인 것들의 부재까지로 의미가 확대 된 것이다.

 

센코노믹스 :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선진국들이 개도국이나 후진국에 국제원조 차원에서 단순히 재화만을 건네주는 것은 그들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본질적인 해결법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무리 그들에게 많은 원조를 해준다고 한들 그들은 재화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티아 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현실에 대한 해답으로써 '동아시아 전략/철학'을 언급한다. 그 전략의 핵심은 바로 '교육'이다. 그는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써 한국, 중국, 일본이 성장하게 된 배경에 교육이 놓여있음을 언급하고, 교육을 통해 인도에서는 과도하게 높았던 출산율이 낮아졌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관심을 두고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교육을 통해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 생활, 그리고 존엄성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위협을 포괄적으로 제거하고 이들 위협에 맞서는 노력에 지원을 강화하는" 인간의 안전보장이다. 그는 한국이 90년대 후반 당시 IMF로 위기를 겪은 데에는 '인간의 안전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항상 경기는 침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간의 안전보장'을 담보로 한 경기침체가 이뤄져야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그의 경제학적 관점은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마티아 센은 공리주의에 입각해 있는 기존의 경제학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부분을 명쾌하게 설명해 내고, 그런 경제학에도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의 경제적인 관점에 대해서만 서술해 놓았지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경제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이 더 큰 그림을 다루고 있다. 뜨거운 가슴을 품은 차가운 경제학자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다면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img. ⓒ 센코노믹스 :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 아마티아 센, 갈라파고스, 2008 

 

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 - 8점

아마티아 센 지음, 원용찬 옮김/갈라파고스

경제학자의 양심’으로 불리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이 전 세계를 돌며 각종 강연과 워크숍 등지에서 발표했던 글들 중 기아와 빈곤의 극복 문제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