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리즈, 007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 주인공이 스파이 역할을 맡는 영화들은 많이 있다. 이러한 스파이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총격신이나 추격신, 폭파신 등 많은 볼거리로 오락성을 겸비하고 있다는것이다. 그러나 겸비라는 표현보다는 오락성이 주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 영화들은 스스로를 스파이물 영화라고 자처하기 보다는 공통적으로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타이틀로 홍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향이 많다보니, 우리들의 사고 속에는 '스파이 영화는 곧 액션'이라는 수식이 당연한 것처럼 내재되어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는 이런 틀에서는 조금 어긋나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어긋나있다. '스파이'영화라는 설명으로 인해 다른 스파이 영화처럼 액션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 속 스파이들과 실제 스파이들의 삶에 괴리가 있음은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스파이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질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상대의 정보를 빼오는 것인데, 대부분의 스파이 영화의 경우에는 여기저기 들쑤시며 누가 봐도 시끄러울 만큼의 소동을 동반하며 다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다른 스파이 영화와는 다르게 스파이의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이런 틀에서 어긋났다는 표현보다는 다른 스파이 영화들이 '스파이'의 실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영화들이 틀에서 어긋났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한번쯤 볼 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그런 만큼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한번 보는 것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다른 스파이 영화에는 당연히 있음직한 요소들이 없다. 영화는 전적으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만 풀어가며, 분위기 자체가 방방 뛰는 분위기도 아니다. 갈색톤 분위기의 영상과 배우들의 중후한 연기는 영화 전체에 퍼져 냉혹하고 차가웠던 2차 대전 이후의 냉전 시대를 잘 묘사해주고 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러함에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스파이물이라는 내용을 듣고 기대했으면 더더욱 그렇다.

 

인물간의 이야기로만 풀어간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대사를 뱉어 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인물들이 많은 관계로 누가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도중에 특별한 구분점 없이 삽입되어 있는 회상신과 과거의 장면들은 영화의 이해를 더욱 어렵게 한다. 때문에 영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한번 보는 것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 스파이들의 삶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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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아마도 이 영화는 지루하고, 어렵다는 이미지로 대부분의 사람들 기억 속에 남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치 있는 것은 당시 냉전시대를 살아가던, 국가 간 전쟁의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던 스파이들의 실제 모습을 사실대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시대는 스파이들로 하여금 많은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도록 강요했지만, 그들 최고의 전성기였기도 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스파이들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스파이들의 삶은 화려하다. 많은 스파이물의 영화가 그러하듯, 주인공들은 화려한 액션 속에서 세상을 구하고, 그 업을 나라로부터 인정받는다. 물론 다른 영화의 스파이들이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사실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은 아내를 잃고, 본 시리즈에서는 주인공의 연인이 죽어버리기도 하니 그런 말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영화들은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이런 내용들은 극의 진행을 위해, 예컨대 주인공이 그런 행동을 하는 동기를 만들어 주기 위한 정도로 사용될 뿐이다.

 

그러나 냉전 시대를 살아가는 스파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는 다르다. 화려하다는 표현보다는 쓸쓸하고 외롭다는 표현이 더 맞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측면으로 접근하자면 이 영화가 전적으로 스파이물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영화는 겉으로는 MI6내부의 배신자, '두더지'를 찾는 내용을 보여주지만, 그 속의 껍데기를 살펴보면 '명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수행해야만 하는 스파이들의 고뇌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로서의 생활, 감춰야만 하는 마음

 

 

어디까지나 스파이의 기본 덕목은 자신이 스파이라는 존재를 남들에게 잘 숨기는 것일 테다. 그 덕목에 감정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물리적인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마음마저 숨겨야했던 것이다. 이는 물리적인 모습이 해체되자 마음이 드러나게 된 리키 타르의 모습에서 반대로 확인해볼 수 있다. 그는 첩보활동을 하기 위해 찾아간 헝가리에서 이리나를 만났고,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게 된다. 모든 정보를 얻었지만 그는 귀국하지 않고 이리나를 영국으로 망명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영화의 끝에서는 비를 맞으면서도 그녀를 기다린다. 자신의 이상형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리키의 말을 통해서 그의 진심을 이해해볼 수 있다.

 

이는 비단 리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컨트롤의 명령을 받아 '두더지'를 찾기 위해 헝가리로 갔다가 살아 돌아온 짐 프리도는 빌 헤이든을 사랑하나, 빌 헤이든이 두더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될 경우 생길 일 때문에 그저 혼자 마음을 삭힌다. 피터 길럼 역시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 두려워, 혹은 그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에 함께 살던 짐 프리도를 쫓아내고 만다. 조지 스마일리 역시도 자신의 부인인 앤을 생각하며 항상 노심초사한다.

 

빌 헤이든, 컨트롤, 코니 삭스 등 영화 속에 나오는 많은 첩보원들은 자신만의 고민, 그리고 믿을 사람이 하나 없는 지금의 오늘이 아닌, 모두가 즐겁게 지냈던 그 옛날을 추억하며 자신의 그런 마음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은 채 혼자서 앓고만 있다. 냉철하며 계산적일 것만 같은 스파이들 역시도 가슴이 뜨거웠던 지난날을 마음으로 품고 있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어쩔 수 없이 감추고 있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파이'인 그들도 한명의 평범한 사람이었다

 

 

영화에서는 회상신이 2가지 정도 사용된다. 하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첩보활동을 하던 도중 총을 맞아 요원 중 한명이 부상당하여 생긴 일화들을 보여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MI6 요원들이 모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모습이다. 전자의 회상신은 '두더지'가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고 후자의 회상신은 웃음이 넘치는 기분 좋은 과거의 모습이다.

 

서로의 불신이 극에 달한 헝가리 사건과, 웃음과 사랑이 가득하던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전혀 상반되는 내용의 두 회상신은 영화 속에서 현재와 함께 지속적으로 교차해서 나타나고, 이는 믿을 정보와 믿을 사람이 없는 현재를 좋은 기억만 남아있던 과거와 비교함으로써 스파이들의 고립감을 더욱 크게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조지는 코니 삭스를 찾아가 폴리아코프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와 함께 컨트롤과 함께 일하던 시절을 반추한다. 웃음이 넘치던 그 시절을 통틀어서 그녀는 '좋은 시절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 좋은 시절이 깨지게 된 것은 컨트롤이 MI6 내부에 소련과 내통하는 배신자, '두더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였다. 결과적으로는 MI6의 수뇌부 모두가 두더지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좋은 시절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스파이로서의 태도'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를 컨트롤의 '편집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그들은 스파이라는 신분의 특성상 자신이 항상 가깝게 지내고 믿고 있던 사람들도 한번쯤은 의심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그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외로움과 고독감만 남을 뿐이다. 스파이들의 그런 싸움은 항상 잘해봐야 본전이다. 우리들은 끊임없는 의심을 종용받는 위치에 있는 그들이 그런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 역시도 서로 웃으며 지내던 시절을 추억하고 있었다. '스파이'인 그들도 한명의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img. ⓒ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