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갈수록 힘들어 지는 현실, 그리고 변하는 것이 없는 오늘과 지체되어 있다는 느낌만 자꾸 드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희망을 잃어간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자신의 삶이 불쌍하다며 후회와 한탄으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다며 불평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럴 때쯤 누군가 나의 어깨를 투닥거려주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러니 마땅히 자신을 위로해 줄 사람도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위로를 받고 싶지만 자신에게 위로를 건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다른 곳에서나마 찾아보고자 해서인지 요근래 많은 분야에서 힐링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방황해도 괜찮아', 그리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등 출판 분야에서 특히 더 힐링 열풍이 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런 책이 아니라도 평소에 주변인으로 부터 많은 힐링을 받고 있다. 가족에게 털어놓거나, 자신의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힐링을 받고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곤 한다. 이미 주변에서 충분한 힐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계속하여 이를 구하는 것은 힐링이 본질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목이 마를 때에 바닷물을 아무리 마신다고 한들, 당장의 목마름은 가실지 몰라도 앞으로 더 목이 마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 오늘날 우리들에게 힐링이 아닌,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해답을 바로 '30일 인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힐링은 잠시일 뿐

 

 

힐링을 주변에서 많이 받고 있음에도 또 다른 힐링을 찾는 것은, 그 만큼 힐링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읽은 한 대학생이 있다고 했을 때, 그가 나중에 또 다른, 힐링과 관련된 책을 바로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잊힐 법 하면 다시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의 힐링이 더 필요하다면 바로 그 책을 읽었을 테지만 말이다. 우리가 힐링을 계속해서 찾는 것은, 힐링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힐링을 통해 잠시나마 위로를 받을지언정 그것 자체가 진정한 해결 방법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힐링이 아닌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30일 인문학에서는 '우리가 대체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왜 살아가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숱하게 들어온 질문 가운데 하나이지만서도,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질문이 어렵다면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 또는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답을 구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답을 바로 오랜 시간동안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인문고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빈민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클레멘트 코스'

 

내용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왜 그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인문학'이 되는지에 대해서 짚어보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현재 서점가에는 힐링 열풍과 더불어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인문학 열풍의 선두주자격인 책도 있을 테고, 그 열풍을 주도해가는 책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인문학이라는 소재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이기도 한 얼 쇼리스가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수업인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함에 있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하루하루 벌어먹기 급급한 노숙자와 같은 빈민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효과적이지도 못하다. 차라리 그 시간과 그 돈으로 노숙자에게 밥 한 끼를,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면 그들에게 효율적인 직업교육을 병행함으로써 그들이 사회의 바운더리 밖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 되도록이면 끌고 오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회의 경계 안으로 들어온 그들의 처우는 여전히 빈민에 그치고, 매사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끝내는 다시 노숙자의 삶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국가의 복지정책으로 이들을 끌어가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바로 그들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일 테다. 그 변화의 열쇠가 바로 '인문학'이다.

 

한 개인이 사회의 경계 밖에 위치하며 빈민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본래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부득이한 이유로 하여 빈민의 삶으로 추락한 경우도 있을 테고, 태어날 때부터 빈민의 가정에서 태어나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 재기할 기회를 마련해주면 다시 일어서는 경우도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변화를 살펴보기 힘들다. 이는 바로 빈민의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은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인 삶'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빈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교육은 특히 이러한 계층에게 특히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복지정책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것은, 복지 혜택을 제공받는 수혜자 자신의 내면이라는 기반을 다지지 못한 채 그 위에 직업교육과 같은 기둥을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빈민들에게 인문학이 유효한 역할을 했던 것은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살아가던 그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침으로써 그들 삶의 이유와 자신을 한번쯤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통해 그들 내면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짐으로써 그 위에 쓰러지지 않는 기둥과 지붕을 올릴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비단 이는 빈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인문학 교육은 주효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을 한번쯤 뒤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물 흘러가듯이 살아갔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살아온 자신이라는 땅 위에 세워진 건물이, 직장 생활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숱한 바람과 폭풍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힐링'을 찾지만, 이는 지반은 다지지 않은 채 폭풍으로 쓰러진 건물을 그저 다시 보수하는 것에 불과하다. 언제라도 다시 바람을 만나게 되면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흔들리는 직장인을 위한 30일 인문학

 

 

인문학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에 누구든지 '나도 한번' 이라는 생각으로 인문고전을 읽어보려고 시도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더군다나 마음잡고 읽기에 시간이 넉넉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늘 소개하려 하는 이 30일 인문학이라는 책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30일 인문학에서는 주요 타겟층을 직장인으로 잡고, 실제 직장에서 벌어질법한 일들을 토대로 인문학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상사와의 트러블, 자신이 남들에 비해 뒤쳐져 보일 때 등, 그러한 실제 사례들은 한번쯤은 꼭 고민했을법한 것들이다.

 

과중한 업무와 불확실한 미래, 아래에서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과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상사들까지. 오늘날 직장인들의 하루하루는 절대로 녹록치 않다. 그 누구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당연한 것처럼 보듬고 살며,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안고 산다. 그들에게는 지금의 이 상처를 낫게 해주는 힐링도 중요할 테지만, 앞으로는 더 다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퇴근 후 술집을 찾아 한잔을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술잔을 기울일 일이 없게끔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