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이들은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또한 자신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도 되지 않았다. 아마 그때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를 본다면 한편으로 부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는 예전에 비하여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더불어 기술적 여건이 닦아진 현재에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생각하는 바를 SNS나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쉽게 개진할 수 있으며, 그런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저 인터넷에서 본 뉴스의 아래로 이동해 댓글을 달아 자신의 생각을 보여줄 수도 있다.

 

오늘날 이런 기술적인 여건의 특징은 파급력이 강하다는 점과, 다수의 사람들이 손쉽게 한데 뭉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기존의 매체는 소수의 공급자가 다수의 대중에게 이야기를 뿌리는 형태였다면, 오늘날의 경우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다소 모호해진것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하도록 하는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대중들이 다시금 뭉치는 형태로도 보여지고 있다. 트위터의 여론을 결국은 많은 팔로워를 가진 몇몇의 트위터리안들이 끌고가는 모습에서도 이를 확인해볼 수 있다.

 

여기에, 대개의 정보들이 정확하게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오늘날 기술의 발달을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이다고만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이러한 부분은 생각하지 않더라도 - 즉, 모든 정보가 정확하게 검증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 결국 특정 정보에 대한 코멘트를 내리는 것은 그 정보를 얻은 개인이 아니라, 많은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즉 웹상에서 영향력이 있는 몇몇 인사들에 의해 생겨나게 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은 충분한 자유를 보장받고 있음에도, 오히려 자신만의 고유함을 잃고서 획일화 되어가고 있는것이기 때문이다.

 

획일화 되는 개별성

 

 

개인의 고유함이 사라지는 이러한 현상은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이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고스란히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아마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그 당시에서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산업혁명이 가져온 획일화는 오늘날의 획일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오늘날 개별성이 사라지고 있는데에 가장 중요한 원인은 소수의 사람을 다수의 사람이 쫓음으로써 시작되었다고 보는게 옳겠다. - 달리 표현한다면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 산업혁명 당시의 획일화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가져다 주는 비슷한 삶의 방식 - 개인의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고, 사회적 분위기도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있는 - 이 아마 그 이유일테다. 저자인 스튜어트 밀은 교육기회의 확대, 커뮤니케이션 수단 발달, 누구든지 출세할 수 있는 사회 등 여러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지만 간단하게 보자면 말이다.

 

사실, 단순히 개인이 획일화 되는 것에 대해 무조건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획일화를 - 여러가지 삶의 방식 중 하나의 방식을 - 선택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음에도 강요받았다면, 또는 별다른 생각이 없이 그러한 삶의 방식을 답습했다면 이는 잘못된것이다. 오늘날의 획일화와 그 시대의 획일화 모두 똑같은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무시의 수준이 아니라, 다수의 의견이라는 주류 프레임에 들어가지 못하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수준의 그것으로 나타나고, 결국 개인은 다수의 의견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개별성의 실종은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서 보다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기본 뼈대가 되는 이야기는 기계인간과 기계인간이 아닌 이들 사이의 대립이고, 그 사이에 주인공인 철이가 위치해 있다. 애니메이션은 기계인간이라는 주류 프레임과, 기계인간이 아닌 이들이라는 비주류 프레임으로 나눠지는데, 전자에 비해 후자는 정상적인 삶조차 영위할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후자인 그들은, 주인공인 철이 역시도 마찬가지로 그 주류의 프레임에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이는 책 자유론에서 다루고 있는 개별성의 실종과는 다소 다른 형태라고도 할 수 있으나, 아무런 변화 없이 살아가는 기계인간들의 사회가 발전이 없고 정체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은 책 자유론에서도 분명히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상적인 삶을 보내는 다수인 주류가 비주류를 억압하고, 자신들의 소유물마냥 이용하는 것 역시도 그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을테다.

 

개별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

 

 

앞선 단락에서 은하철도 999의 예를 들어 봤지만, 사실 다수의 의견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수의 의견이 묵살되는 경우는 인터넷 상에서 쉽게 접해볼 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전에 연예인 배슬기의 종북 트윗이 논란이 되었던 것 역시도 다수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소수의 의견이 묵살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먼 곳에서 관조하며 이 사건을 지켜봤을 때, 애초에 배슬기가 종북 관련 트윗을 남긴 이유 하나만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을것은 예상된 일이기도 했다. 단정짓기는 곤란하나 이미 온라인 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다수의 의견과 그가 올린 트윗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배슬기의 그러한 트윗을 비단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고 하여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표현을 한다면,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을 묵살할 수 없다고 적어볼 수 있겠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운 생각이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 처럼, 다른 사람의 의견 역시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충고나 훈계는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손가락질 할 자유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개별성을 보장해줘야만 할 필요가 있다.

 

앞선 단락에서 은하철도 999의 예를 들어 개별성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의 극단적인 한 예를 들어봄으로써, 사회에서 개인의 개별성을 보장해줘야 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우리 사회가 개별성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고전과 현대 물리학의 기점을 나누는데에 표지가 되는 상대성 이론 역시도 바로 아인슈타인만의 그러한 특별한 개별성에서 출발하였고, 우리들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역시도 스티브 잡스 자신만의 독특한 개별성에서 출발하였다는 그 예전의 예시들 속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미뤄 짐작해볼 수 있다.

 

보장되어야 할 생각과 토론의 자유

 

 

정체된 사회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 꼭 보장되어야 할 개별성이지만,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생각과 토론의 자유이다. 물론 여기서는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법한 생각을 하는 자유 역시도 포함된다. 즉, 우리가 몇 가지 상정해볼 수 있는 것들은 다수의 의견이 사실은 옳은 의견일 때 - 달리 말해 새롭게 개진되는 소수의 의견이 틀린것일 때 -, 그리고 다수의 의견과 소수의 의견 모두가 잘못되거나 혹은 둘다 옳은 의견일 때가 있을 수 있겠다. 물론 모든 사안에 대해서 토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저자인 스튜어트 밀은 이야기 하고 있다.

 

먼저 다수의 의견이 사실은 옳은 의견일때를 생각해보자. 물론 저자인 스튜어트 밀은 이 경우에도 토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 두가지 방향으로 접근을 한다. 하나는 옳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라도 토론을 막을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어야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 내거나, 또는 기존의 의견의 부족한 점을 채워낼 수 있을테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옳은 의견이 생명력을 잃었을때다. 사람들은 기존에 오랜 기간동안 믿어오던 것들에 대해서는 더이상 궁금해하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마치 일 더하기 일이 이라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의견에도 토론을 붙임으로써, 왜 그 사실이 옳은지와 같은 점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봄으로써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논리를 통해 긍정적인 지식에 확신을 더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두가지 의견 모두가 옳거나, 또는 두 의견 모두 잘못되었을 때에는 당연히 토론을 붙이는 것이 옳다. 이 점에 대해서는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의견이 모두 옳을 경우와 모두 틀렸을 경우, 두 가지의 경우 모두 토론을 통해 상호 보완함으로써 더 나은 의견으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한다면, 생각과 토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완벽하다고 전제하는 잘못을, 그리고 독단적인 구호로 그치는 문제점을 수반하기 때문에 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자유를 통해 인간은 행복해진다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자유가 왜 주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책은 여러가지 결함 역시도 가지고 있다. 스튜어트 밀은 모든 인간은 이타적이며 서로 협력하는 삶을 살며 이웃이나 동료와 강한 일체감을 느낀다고 가정했지만,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있다. 또한 그는 자유라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서 미개 사회에는 독재가 정당한 통치 방법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그것이다. - 미개 사회라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책에서 밀이 생각하는 '자유가 주어져도 좋은 사람들'의 범위는 서양권의 시민들에게 국한돼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하지만 그러한 결함이 있다고 해서, 밀이 논하고 있는 자유의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이미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자유라는 가치를 다소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아마 그 이유는, 밀의 말을 빌리자면, 자유의 가치는 분명히 옳은 의견인것이 사실이지만, 오랜 기간동안 이에 대한 논의가 오가지 않아 생명력이 사라졌기 때문일테다. 사실 자유라는 것은 너무나 거대한 담론으로 생각되고, 또한 개인이 쉽게 곱씹어 볼만한 것도 아니기에 이에 대한 논의가 오가지 않는 것에 대해 가타부타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미 그것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자유라는 것이 꼭 그렇게 거창하지만은 않다. 피곤할 때 쉴 수 있고, 책을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것등의 것들도 모두 자유이다. 사상의 자유라거나 결사의 자유 같은 거창한 것들을 꼭 생각해볼 필요는 없다. 물론 보다 고상한 자유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모든 종류의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는 것'이라고 표현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통해 인간이 행복해진다는 사실은, 더 이상 논의를 할 필요도 없는것일테다. 그리고 자유를 누림으로써 행복한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가 더 큰 발전을 이룩한다는 사실 역시도 이미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는 이 자유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보고, 그 소중함을 한번쯤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유론 - 10점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책세상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의 대표작. 개별성이 상실되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자 했다. 밀은 개인의 선택이 초점을 맞추어, 사상, 표현, 결사(기호를 즐기고 희망하는 것을 추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완벽하고 자유로운 사회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밀은 한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