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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인간 중심의 기술 적정기술과의 만남

by 카쿠覺 2013. 7. 7.


적정기술, ‘절대빈곤의 다수를 위한 착한기술’

redherring.t@gmail.com


지난 수 세기 동안 인간은 수많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찬란한 문명을 이룩해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술은 환경 파괴나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여러 이유로 손가락질 받기도 했지만, 고도화된 기술이 인류 전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예컨대, 기술의 발전을 통해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많은 수인성 질병으로부터 인간은 해방될 수 있었고, 또한 이동수단의 발전을 통해 인류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여러 일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지만 오늘날의 기술 발전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인류 모두에게 그 혜택이 나눠지고 있다는 부분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현대 기술의 발전은 시장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새롭게 만들어진 기술이 시장에서 판매되고, 이를 토대로 얻은 이익이 다시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는 인류 전체의 기술 수준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맡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흐름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기술의 가격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며, 이는 곧 절대적으로 구매력이 부족한 절대빈곤층은 해당 기술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부분을 고려했을 때, 이전의 기술 발전과 오늘날은 분명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흐름은 기술을 발전시키는 엔지니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측면을 갖게 된다. 이는 과거와는 다른 현대의 기술 개발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과거의 기술 개발은 엔지니어의 아이디어를 통해 시제품을 제작하고, 그 후 시장성 평가를 거친 후 양산되는 형태였다면, 오늘날의 경우는 앞서 언급한 바대로 시장의 요구에 맞춰 연구의 주제가 설정되고, 이에 따라 제품을 양산되는 형태의 모습을 띄고 있다. 즉, 시장의 요구가 없는 주제의 경우에는 연구조차 되지 못한 채 사장당하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엔지니어의 창의력이 시장이라는 테두리 내에서만 발현될 수밖에 없다는 단점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를 시장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형태로 만든다는 점에서 엔지니어 개인으로써도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적정기술의 등장



기술의 본래 목적이 인류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고 봤을 때, 현재의 이런 흐름은 바람직한 흐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에든지 스스로 치유하려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기술 역시도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이는 반세기 전, 슈마허에 의해 처음으로 제안된 ‘중간 기술’에서 출발한다. 슈마허가 제창한 중간 기술은 개도국의 토착 기술보다는 우수하나 선진국의 기술에 비해 소박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해당 용어의 의미가 자칫 기술의 수준이 낮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이로 인해 현재는 중간 기술이라는 용어 대신 적정기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적정기술이 등장하게 된 사회적 배경, 그리고 슈마허가 중간 기술이라는 단어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 등의 것으로부터 우리는 적정기술이 함의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확인해볼 수 있다. 책에서는 적정기술을 5가지로 정의하는 예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는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즉, 기존에 구매력이 있는 자들에게만 허용됐던 기술 시장(Market)을, 이제는 구매력이 없이도, 또는 매우 적은 구매력으로도 접근할 수 있는 기술 광장(Square)으로 만들자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은, 적정기술은 단지 기술 그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기술 개발의 흐름 자체를 반성하고, 또한 문제점을 자각함으로써 생겨난 하나의 사고 체계, 나아가 기술 개발의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정기술은 실제로 여러 개도국에 전파되어 해당 국가, 그리고 공동체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세계인구의 6분의 1이 오염된 물로 생명을 유지해 나가고 있고, 이로 인해 하루에 6000명이 사망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생명의 빨대(Life Straw)는 해당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냈으며, 화덕에서 발생되는 연기로 인해 질식사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케냐 화로(Kenya Ceramic Jiko)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려냈다. 그러나 우리는 적정기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품고 있는 의미로 인해, 단지 이러한 것들이 해외 봉사활동, 내지는 국외 원조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즉, 적정기술을 사업모델로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무조건적인 도움은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적정기술을 이용하여 제작된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낸다는 것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여 원금을 회수하고, 나아가 소득을 만들어낸 사례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는 생명의 빨대의 경우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일반인들이 해당 제품을 구매하면, 똑같은 수만큼의 빨대를 기부하는 형태로써 개도국에 생명의 빨대를 보급해나가고 있으며, 특히 안전한 식수를 위해 물을 끓일 필요가 없어짐으로써 이로 인해 감소된 탄소를 바탕으로 탄소배출권을 매매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에 대해서 ‘봉사하고자 하는 일인데 굳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로부터 수익을 낼 생각을 해야만 하는가?’와 같은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곳에 온전히 돈을 목적으로만 적정기술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적정기술이 단순히 봉사의 차원에서만 그친다면, 이는 적정기술의 혜택을 받은 공동체를 오히려 파괴시키는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미리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개도국에서 모기로 매개되는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모기장을 무료로 공급해주는 활동이 있었다. 그렇게 모기장이 무료로 지급됨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 돈을 주고 모기장을 구입할 수 있었던 곳은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되었고, 종국에는 단 한곳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 후, 무료로 받은 모기장이 시간이 지나 조금씩 망가지게 되었지만, 이미 모기장을 파는 곳이 없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새로운 모기장을 구입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선의로 행한 행동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례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아무런 고려 없이 도움을 준다면 이는 오히려 도움을 받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적절한 수준에서 이뤄진 수익 사업을 통해 발생된 이익을 다시 해당 공동체에 투자하는 데에 사용함으로써 서로가 상생하는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것이라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생명의 빨대를 일반인이 구매할 경우, 그 개수만큼 해당 지역에 공급하는 것이나, 전자제품을 판매함에 있어서 최소한의 가격만을 받아 그 수익으로 사후관리를 해주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적정기술과 비즈니스의 만남



이처럼 적정기술로도 수익을 낼 수도 있으며, 또한 그 점에 대해서 정당성도 존재하지만 이 분야가 기존의 기업들이 매력 있게 진출할만한 분야가 아님에는 분명하다. 결국 이 분야에 대한 접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차원으로써 단순한 물적 기부, 또는 인적 봉사차원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 소비자들은 기업이 시대의 문제점을 얼마나 공감하고,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 지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며, 나아가 이를 구매 준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이 분야를 고려해보기 시작했다.


예컨대 펩시의 Refresh Project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프로젝트는 ‘청량음료가 세상을 더 좋게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한 개선책을 보내면 아이디어에 따라 예산을 지원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펩시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장 점유율이 소폭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슈퍼볼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가장 많이 회자된 브랜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점에 미뤄보면, 이는 충분히 가치 있는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이를 토대로 사회와 기업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공동의 가치를 창출한다는 CSV(Create Shared Value)는 더 이상 손해 보는 장사, 또는 단순한 봉사활동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기존의 기업들이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같은 기술에 대해 여러 가지 모델을 만듦으로써, 시장에서만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도 이를 누릴 수 있도록 값싼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BOP 시장을 타깃으로 한 보급형 제품을 함께 생산하여 지원한다는 의미다. 필립 코틀러가 본인의 저서인 마켓 3.0에서 '우리는 더 이상은 재화의 부족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구매자의 부족에 직면하고 있다. 좋은 회사는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지만, 훌륭한 회사는 시장을 만들어 낸다.'라고 말했듯이, 이렇게 기존에 고려되지 않았던 BOP 시장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업은 기존의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더욱 어필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내고, 나아가 BOP 고객은 나은 기술에 접근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짐으로써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절대빈곤의 다수를 위한 착한기술



‘절대빈곤자들에 손에 휴대폰을 쥐어주는 것은 빈곤으로의 탈출의 키를 쥐어주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절대빈곤자들에게 적절한 기술이 공급 될 때, 비로소 그들이 현재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단순히 과학 기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기존의 제도권 금융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그들의 자활을 돕는다는 취지에 만들어진 마이크로 파이낸스(미소금융)역시도 절대빈곤의 다수를 위한 착한기술, 즉 적정기술이라 할 수 있을 테다. 이러한 모든 면면들을 살펴본다면, 이제 적정기술은 기술의 본래 의미를 찾기 위한 운동을 넘어서서, 오늘날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하나의 사고 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적정기술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폭 넓은 공학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도 할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디자인에 대한 뛰어난 감각이 필요로 하다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도움을 주려 하는 공동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 그리고 진정성이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한 이해, 그리고 진정성이 없다면 수준 높은 공학적 지식과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있다고 하여도 이는 앞서 살펴본 모기장 사례에 머물고 말 것이며, 이는 오히려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그들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태도를 먼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저 여우가 두루미를 자기 집에 초대할 때 내놓은 넓적한 접시와 마찬가지의 기술을 그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에 불과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즉,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전달해주는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기술을 전달 받을 그들의 위치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적정기술은 값이 저렴하면서도 좋은 기술이 아니라, 해당 공동체의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을 항상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절대빈곤의 다수를 위한 착한기술로서의 적정기술이 빛을 발할 수 있을 테다.

 

인간 중심의 기술 적정기술과의 만남 - 8점
김정태 외 지음

적정기술의 다양한 접점을 소개한 책으로, 적정기술이 지닌 의미가 단지 '기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의미와 넓은 활용 범위를 지닌 것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장에서는 적정기술의 의미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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