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영화 디태치먼트를 통해 공교육이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살펴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곳에서 그려지고 있는 모습이 다소 과장되었다거나, 혹은 우리나라와는 다를 수 있다는 반론은 충분히 생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학교2013의 방송 내용 -디태치먼트를 모티브로 삼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드라마로 대부분의 설정이 영화와 유사함- 을 토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실제 학교 현장은 이것보다 더 심하다’는 의견도 의외로 많았던 점으로 미뤄볼 때,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섣불리 속단 할 수는 없다.
이렇게 공교육이 무너지게 된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지난번 포스트에서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 등의 총체적인 문제라고 언급했지만 사회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었다. 예컨대 학력주의, 내지는 성과주의나 경쟁주의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러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이유들이 될 것이다. 그러한 원인들로 인해 현재의 교육은 한 개인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함에 있다는 본래의 목적과는 다소 유리된 채 단순히 한 개인을 평가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물론 높은 성적을 통해 꿈을 이룰 수도 있지만, 이는 그저 할당된 여석을 성적순으로 나눠먹는다는 느낌일 뿐, 모든 개개인의 꿈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특정 직업군의 숫자는 제한될 수밖에 없고, 또한 선호되는 직업군도 사실상 한정되어 있다. 이는 한정된 여석을 가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며, 이 여석을 가지기 위해 학교에서의 성적은 단연 중요하다. 이러한 여러 환경들을 고려해봤을 때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활성화된 사교육 시장은 다시 한 번 공교육을 붕괴시키는 데에 일조하고, 그렇게 붕괴된 공교육은 다시 사교육 시장을 활성화시킨다. 결국 끊어지려야 끊어질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렇게 완성 된 것이다. 책 ‘왜,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할까’는 이러한 고리를 끊는 대안으로써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행학습금지 뿌리와 그 역사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병폐들은 사실 그 옛날부터 이어져 오던 것으로, 달리 보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정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예전부터 쭉 있어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행학습을 금지하려는 시도 역시도 마찬가지로 계속되어 왔다. 중학교 입시를 위한 과외가 성행하자 중학교 무시험 입학 제도를 만들고,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과외가 또 생기자 이제는 고교 평준화를 시행한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공교육 정상화 및 사교육 시장의 억제를 위한 정책 중 가장 강력하게 시행됐던 것은 아마도 1980년,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7.30 교육개혁조치를 통한 과외금지 조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지만 이는 2000년 헌법재판소에서 ‘과외금지 조치는 자녀교육권과 행복추구권에 위배된다’는 국민청원을 받아들이면서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판단을 내리며 위헌조치를 내린 바 있다. 오늘날에도 섣불리 선행학습금지를 법을 통해 제정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개인의 자유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교육 정상화는 어느 정권에서나 공약으로 내세워졌었고, 이는 금번에 대통령으로 선출 된 박근혜 대통령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선행학습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공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이것이 과연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인가는 나중에 이야기할 부분이고, 우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최근의 시도들에는 무엇들이 있는지를 살펴보자.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여러 시도들
공교육이 무너지게 된 배경에 대학입시가 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대학입시제도의 수술을 통해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려는 노력은 대부분의 정권에서 시도되어 왔다. 이로 인해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입시제도의 수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최근 몇 년간의 대학입시제도의 변화는 단연 수시전형의 강화 및 수능의 약화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지난 이명박 정권 당시에 시작된 입학사정관제와 내신강화, 그리고 2014년 수능 개편안이 바로 이에 대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결국 수능의 약화라는 점에 수렴하는데, 실제로 수능만을 통해 대학을 가는 일이 현재는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잘 나타나고 있다. 물론 2014년 수능개편안의 취지는 공교육 정상화에 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는 있다. ‘과도한 시험 준비 부담이 없는 수능’, ‘학교 수업을 통해 준비할 수 있는 수능’, ‘고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수능’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단지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결과만을 가져오고 말았다. 내신의 강화가 곧 선행학습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내신의 강화는 학교에서 치르는 매번의 시험이 중요해진다는 의미이고, 그 시험들을 잘 보기 위해서 선행학습은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시험에 출제되는 범위를 빠르게 학습한 후, 이어 문제 풀이에 익숙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진도만을 따라 가다가 시험까지 이어지는 일반적인 학생의 경우라면, 실질적으로 시험을 대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즉, 이러한 변화는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선행학습 금지는 효율적인가?
그리고 이러한 선행학습은 필연적으로 사교육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의 입시제도의 특성상 선행학습은 필요하기 때문에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선행학습 금지를 법제화 하자는 것이 이번 정부의 공약이자,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뜻 봐도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모 교수가 밝혔듯이, 선행학습은 공교육 붕괴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 증상이기도 하고, 때문에 선행학습 금지는 그 증상에 따른 치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 ‘왜,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할까’는 선행학습이 공교육이 아닌 개인에게 어떤 형태로 부정적인 영향일 끼칠 수 있는지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로는 수업에 대한 흥미를 잃고, 문제풀이에 집중한 나머지 응용문제는 풀어내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애초에 학원 교육이 원리와 개념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보다는 문제풀이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과정에는 충실하지 못한 채 결과에만 매달리게 되니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선행학습이 학생의 성적을 떨어지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부분이다. 선행학습을 받은 학생들의 상당수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자신이 이전에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해당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학교공부에 흥미를 잃고, 이는 곧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의 약화로 이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학생 개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더 깊은 내용을 학습하지 못한다거나 교과 과정 외의 것을 학습하기 어렵다는 등의 여러 가지 단점을 책은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이는 곧 과도한 사교육은 학생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마도 책을 읽다보면 이 부분에서 모순되는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다. 책은 사교육비와 수능 점수의 연관성을 보여주며 많은 사교육이 높은 점수를 가져다준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책의 뒤에서는 사교육은 오히려 성적을 낮출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사교육을 받고 안 받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자녀를 교육한다고 한들, 학생 스스로가 공부하려는 의지와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공교육 정상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어떻게 해주느냐의 문제이지, 선행학습을 금지한다고 하여 단순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교육은 어떻게 정상화할 수 있을까?
참여정부 당시 한미FTA로 인한 법률시장 개방에 따라 우리나라의 법률시장 역시도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판단 하에 로스쿨이 새로이 설립되고, 사법고시는 이제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돈 없는 가정의 자녀들이 삶을 역전할 수 있는 등용문으로 불리던 사법고시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부의 대물림이 지속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 역시도 사법고시를 통해 삶을 역전시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물론 한미FTA에 의해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겠지만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는 선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공교육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의 꿈을 실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거나, 또는 바람직한 사회의 일원을 만들어 낸다는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공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보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사법고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공교육 정상화의 명목 하에 수능을 축소하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나가고 있다. 물론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 등을 통해 소외계층에게 일부 문이 열려있지만 이는 대개 대학별 30명 남짓으로 극히 소수다. 즉, 체험학습이나 봉사활동 등 학교 공부 외적인 것에 신경 쓰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대학문은 더 좁아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선행학습금지로 돌아와 보자. 실질적으로 법을 통해 선행학습금지를 할 수 있는 방안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우리나라가 북한처럼 계획경제, 사회주의를 쫓지 않는 이상 직접적으로 사교육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는 곧 선행학습이 더 이상은 필요 없게끔 공교육을 수정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로 그 방법이 앞선 문단에서 언급한 수능의 약화, 그리고 입학사정관제도의 확대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입학사정관의 전문성과 공정성이 무조건적으로 담보되지 않은 이상은 부의 대물림을 사회적으로 조장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선행학습금지가 함의하고 있는 취지는 부의 대물림과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현재 이를 시행하고자 하는 여러 방법들은 결과적으로 부의 대물림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수준이다. 즉,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교육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옛날의 고등학교로 회귀하는 것 밖에는 없다. 수능의 강화와 야간자율학습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앞서 우리가 살펴봤듯이, 사교육을 아무리 받는다고 하여도 개인의 노력이 없다면 높은 성적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보면 다른 것들에 비해 성적이 돈에 가장 영향을 덜 받는 객관적인 요소일 수도 있다.
학생의 인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때문에 책이 설명하고 있는 ‘자기주도 학습전형’과 같은 형태가 중학교 때까지는 적용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 기간 동안에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여러 경험을 통해 보다 깊게 탐색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대학 입시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크다. 실제로 수시가 도입된 이래로 사교육 시장이 더욱 팽창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대학 입시에서는,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옛 것을 통해 새것을 배워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왜, 선행학습을 금지해야만 할까? - 열린사회참교육학부모회 지음/베이직북스 대입정책이 거쳐 온 교육과정의 흐름을 파악해 보면 금방 “왜,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할까?”에 대한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의 근간을 너무 쉽게 훼손하였으며, 또한 교육 정책의 대책을 충분한 협의와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봉책으로 대처하여 오히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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