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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조지오웰 동물농장 : 어리석은 혁명은 독재적 권위체제를 낳는다

by 카쿠覺 2022. 4. 18.

 

조지오웰의 1984와 함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동물농장은 인간이 주인인 농장에서 생기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중 농장의 모든 동물에게 존경을 받았던 수퇘지 메이저는 두 다리로 걷는 놈은 전부 적이며 네다리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우리의 친구이다라며 동물을 제외한 모든 이는 적이라 설파하고, ‘동물의, 동물을 위한, 동물에 의한 동물의 농장을 세우자라고 얘기한다. 돼지들 외에는 글자도 몰랐던 다수의 동물은 이러한 그의 주장에 동조하고 그가 사망한 뒤에는 농장에서 인간을 쫓아내는 혁명을 일으킨다.

 

소련을 향한 신랄한 비판

 

 

농장 속 동물들이 이뤄낸 혁명은 인간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들은 인간에 억압받던 자신들을 스스로 구원하고자 혁명을 일으키는데, 이는 지배층의 억압에서 벗어나 피지배층의 사회를 만들자는 소련이나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의 계급혁명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 속 농장의 끝이 그리 좋지 않았던 만큼 조지오웰은 우화의 형식을 빌린 이 소설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고자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조지오웰은 생전에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에 가입하여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는 등 사회주의 자체에 나쁜 감정은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몸담고 있던 통일노동자당이 스탈린의 반대파였던 트로츠키파로 찍히면서 스페인 공산당에 의해 수배받는 등 핍박을 받게 되자 그때의 경험으로 스탈린에 대한 악감정이 크게 생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점으로 미뤄볼 때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을 다루고는 있으나 스탈린을 위시한 소련과 전체주의, 그리고 독재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소설 속 많은 내용이 소련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게 그려지고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크게 혁명을 일으키는 돼지들, 그리고 이를 뒤따르는 대다수의 피지배층 동물들로 이뤄지는데, 이 돼지 중 중요인물로 앞서 언급한 메이저, 그리고 스노블과 나폴레옹을 꼽을 수 있다. 메이저는 농장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연로한 돼지로 인간이 없는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동물들에게 전달하며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며 죽는다. 사회주의의 이념적 기틀을 닦고 죽었던 카를 마르크스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의 유지를 이어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는 철저한 이상주의자로 그려지고 있는 스노블은 트로츠키를 떠오르게 하며, 철저한 현실주의자 또는 독재자로 그려지는 나폴레옹은 스탈린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 속에서 혁명을 위해 앞장서 싸우는 스노블의 모습, 그리고 스노블과 나폴레옹의 다툼은 흡사 당시 국방장관이던 트로츠키의 모습과 당시 트로츠키와 스탈린간의 권력 투쟁 모습을 빼닮았다.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조지오웰은 소설을 통해 스탈린, 즉 나폴레옹에 대한 비판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메이저의 죽음 이후 동물들은 혁명에 성공하며 혁명 초기, 즉 스노블이 남아있던 시기의 동물농장은 인간이 농장을 운영할 때보다 훨씬 살기 좋았던 것으로 묘사가 된다. 그러나 스노블이 나폴레옹과의 권력다툼에서 패배하여 쫓겨난 후 동물농장의 상황은 급격히 나빠진다. 돼지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며 동물을 통제하기 시작하였으니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정의를 실현하겠다며 하위계층을 끌어들여 혁명을 일으킨 중간계층이 결국은 그들을 자신들의 신분 상승 도구로만 이용한 뒤 다시 피지배층 위에 군림하는 지배층이 된 것이다. 사회주의가 아닌 독재적인 권위자로서 군림하고자 했던 스탈린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소설에서는 카를 마르크스를 메이저에 빗댔듯이, 사회주의를 동물주의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동물주의라는 사상체계는 구성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 동물농장에서 인간을 축출하고 동물만의 세상을 이뤄냄으로써 완벽하게 실현된다. 그 과정에서 스노블과 나폴레옹의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겠으나 무엇보다 이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농장의 다수를 차지하는 다른 동물들의 지지와 실질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다수의 동물은 동물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그들의 사상체계를 간략하게 요약한 칠계명조차 이해하지 못해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는 간단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이해했다. 물론 그들 가운데에도 칠계명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벤저민이라는 지식인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수의 동물에게 이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식인이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나폴레옹은 스탈린이 그러했던 것처럼 칠계명을 자신의 입맛대로 수정하기에 이르며, 소설의 끝에서는 칠계명의 남은 한 문장이었던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마저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다!’(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고 바꾸기에 이른다.

 

어리석은 혁명은 독재적 권위체제를 낳는다.

 

 

만약 다수의 동물이 동물주의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또는 동물주의를 이해하고 있었던 벤저민이 지식인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다 했다면 인간에게 지배받던 그 시절보다 더욱 나쁜 현재는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상황이 끝나버린 소설의 끝이 되어서야 동물주의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던 벤저민이 끝내 입을 열고 칠계명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하나의 계명을 클로버에게 읽어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을 때였다.

 

작중 나폴레옹의 행동들이 실제 스탈린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는 점, 혁명 이전보다 더욱 살기 힘들어진 농장 속 동물의 현실을 통해 조지오웰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내용은 명약관화하다. 기본적으로는 나폴레옹과 같은 피지배층을 이용하는 부도덕한 사회 지도자들 내지는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이며, 궁극적으로는 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피지배층의 무지함이 나폴레옹과 같은 부류를 지도자로 만듦으로써 독재적 권위체제를 낳고 결국 계급혁명이 실패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지독하고 차가운 비루한 현실보단 그럴듯하고 멋진 판타지를 원한다. 계급혁명을 주도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그것을 이뤄낸 자들은 대중들의 그러한 속성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이를 자신을 위해 주도면밀하게 이용한다. 작중의 나폴레옹이 그러했고 현실에선 스탈린, 그리고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 국가들이 그러했다. 노멘클라투라라 불리었던,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했던그들은 공산 귀족으로 노동을 통한 생산력은 발생시키지 않고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여 노동자들의 생산력을 발판삼아 부를 축적했다. 이는 비단 지배층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작중에서 일만 열심히 하다 결국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말 복서, 그리고 일은 하지 않은 채 배급만 나눠 갖는 여러 동물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면서 농장 전체에 이러한 체제의 불합리함이 널리 퍼져있음이 드러난다. 1990년대 소련을 시작으로 한 공산권의 몰락은 어쩌면 체르노빌의 RBMK 원자로처럼 시스템의 근본적인 결함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일이 아니었을까.

 

당시 공산권 국가, 특히 스탈린을 향한 비판의 목적으로 쓰인 이 책은 그 이유로 냉전 당시 미국에서 많이 읽혔으며 마찬가지의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힌 책이다. 일차적으로 이 책은 반공 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으나, 작가인 조지 오웰의 삶, 그리고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내용으로 미뤄봤을 때 지배층을 향한 피지배층의 감시, 그리고 지식인들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반공은 철지난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이 소설이 얘기하는 것이 단순한 반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에 현재에도 여전히 나름의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동물농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민음사

1945년에 간행된 조지 오웰의 대표작. 어떤 농장의 동물들이 늙은 돼지 메이저의 부추김에 빠져 농장주의 압제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인간의 착취가 없는 `모든 동물이 평등한 이상사회`를 건설한다. 그러나 돼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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