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MBC 서프라이즈에서 '빅 브라더의 시대'라는 타이틀로 베리칩(VeriChip, verification chip)과 관련한 내용을 다뤘던 바 있다. 베리칩은 생체 정보를 저장하는 칩으로, 기존에는 애완동물에 한해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이식되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서프라이즈에서는 이 베리칩으로 하여 개인을 뜻대로 조종하고, 원한다면 죽일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상 현재의 기술로서 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해당 프로에서 나왔듯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요소는 오늘날의 기술로도 충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베리칩의 이야기를 다루는 내용의 꼭지를 '빅 브라더의 시대'라고 꼽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하고 감시한다는 뜻으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그렇기에 베리칩 이야기를 하며 다뤄졌던 이 '빅 브라더'라는 단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오세아니아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국가이다. 국가가 개인의 모든 행동과 말을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심지어 그들의 자녀들까지 이용하여 감시하며 통제하고 있다. 이런 전체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영국사회주의의 대표, 체제의 상징이기도 한 자가 바로 '빅 브라더(대형)'이다. 그래서일까, 소설속 런던에서는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본다.'라는 포스터가 도시 여기저기에 붙어 있다.

 

이 극단적인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비단 통제와 감시뿐만 아니라 '신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듦으로써 개인의 사고를 제한하려고도 한다. 또한 '이중사고'나 '죄중지'와 같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개념을 생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를 실천하도록 지시한다. 간단하게 다루자면 체제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때, 바로 그 직전에 생각을 멈추거나, 또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사실은 그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믿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러한 전체주의 국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왜 사람들은 이 체제에 수긍하는가?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당원이고 하나는 노동자이다. 그 둘 모두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지 못하다는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나 당원은 노동자에 비해 더 심한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된다. 그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해보자면 당원이 노동자에 비해 더 성숙한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를 단순하다고 표현한 것은 감시를 위해 지급한 텔레스크린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부 소식으로 인해 그들의 위선을 알게 되어 성숙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더 성숙하기 때문에 텔레스크린으로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소설 속에서 당원들이 노동자에 비해 이 체제의 허구성을 아주 잠깐이나마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당 차원에서 이중사고나 죄중지와 같은 개념을 만들 필요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윈스턴과 같이 현재에 저항하려는 인물도 나타날 수 있는것일테다. 그러나 노동자의 경우에는 - 소설에서 비중이 다소 낮기 때문에 그런것일수도 있으나 - 체제의 허구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소설에서는 '노동자들이 애국심에 불타 골드스타인을 성토하고 늙은 부부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죽인다.'라는 내용을 다루면서 그들의 무지함을 보다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당원들이 잠시나마라도 느끼는 것과는 다르게 노동자들이 이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하루의 삶이 고단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이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온 세뇌를 통해, 또는 계속하여 살아온 현실이기 때문에 무감각해진 것 일수도 있다. 윈스턴이 자신의 일기장에 적은 말을 빌려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을 설명한다면 이는 노동자가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체제에 대한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그들에게 체제에 대한 의식이 드는 순간, 체제는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은 체제를 영원히 의식할 수 없을 테다.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인 '전쟁'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의 수준은 날이 갈수록 발달하고 있다. 그러한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양보다 더 많은 생산품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사회 구성원 전체의 생활수준은, 물론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향상되게 되었다. 향상된 생활수준으로 대중의 의식수준은 기존에 비해 높아지게 되었고, 이는 곧 자신의 체제를 의식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은 사실 당연한 과정 중 하나이기 때문에, 오늘날 대중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오는 데에 기술발달이 한 축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시사하는 바는, 앞선 단락에서도 언급했지만 대중들이 체제를 의식해야만 변화가 있다는 사실이며, 또 다른 것은 바로 잉여생산품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면 대중들의 의식 수준을 향상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기술이 발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잉여생산품의 발생을 억제할 수는 없다. 때문에 잉여생산품을 사회 전체가 골고루 나눠 가지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있다는 바로 이 사실이 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법은 어떻게 실현이 가능할 것인가? 일부 소수의 인원이 많은 양의 잉여생산품을 보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지만 이는 대중에게 반감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보유가 아니라 소모라는 측면으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잉여생산품을 소모하는 방법에도 역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다수의 사람들을 국가라는 구심점으로 한데 엮으면서도 그러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전쟁'이다. 전쟁을 통하여 무의미하게 지속적으로 잉여생산품, 즉 재화를 소모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재화가 사회에 골고루 전달되는 것은 사전에 방지된다. 소설속 세계를 삼분하여 갖고 있는 유라시아, 오세아니아, 이스트아시아 세 전체주의 국가 모두가 전쟁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들은 경제, 군사적 발달과 더불어 대중의 무지를 이뤄낸다. 무지한 대중으로부터의 혁명은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체제 역시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게 된다.

 

권력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슈퍼파워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원하는 국가를 선택하여 그 국가의 대통령이 되어 한 나라를 운영하는 게임이다. 비록 게임이지만, 한 나라의 권력을 사용자에게 일임하여 그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어떤 목표를 이룰 것인지를 정하게 된다. 자신의 국가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할 것인지, 아니면 세계평화를 이룩할 것인지와 같은 특정한 목적을 설정하게 되고, 이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게임은 종료되게 된다. 비단 이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 역시도 사용자에게는 게임 속 모든 유닛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지고, 사용자는 그 게임을 통해 어떤 특정한 목표를 이루게 된다. 이런 게임 속에서 사용자에게 주어진 그러한 권력은 그 목표를 이뤄내게 도와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소설 1984속에서 권력의 속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서 권력은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바로 그것이 끝없는 전쟁이 계속하여 이뤄지고 있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소설 속에서 '전쟁은 지배집단의 그 백성에 대한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은 영토의 정복이나 반항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있다'라고 언급한곳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승리도, 그리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패배로도 귀결되지 않는 무한한 전쟁이 이뤄지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 권력은 '세계를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해 세계를 통일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또 다른 전쟁을 할 수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는 곧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 그들에게는 올바른 선택이 아닐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전체주의, 왜 변화하지 못할까?

 

 

1984는 그야말로 전체주의자의 이상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테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견주어 본다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끔찍한 세상이다. 하지만 그 끔찍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대한 힘에 눌린 채 자신이 발을 딛고 서있는 곳이 어떤 세상인지 또렷하게 바라보지를 못한다. 글 전체에서 우리는 그런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로 '잉여생산품의 분배를 억제함으로써 대중들의 부의 소유를 통제하고, 이를 통해 의식의 향상을 막는다.'를 꼽았고, 그 과정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소설 1984속의 오세아니아는 이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대중들의 의식이 향상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바로 '신어'이다.

 

사람은 언어로 사고한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자라고 한들, 언어 구사력이 떨어지면 수준 높은 사고를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로써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를 비틀어서 바라본다면 '언어를 통제할 수 있다면 대중의 의식을 통제할 수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소설 1984속에서는 이를 위해 혁명을 기점으로 '구어'와 '신어'를 나누는데, 신어를 만들면서 수많은 단어들을 삭제, 또는 새롭게 만들게 된다.

 

이는 단순히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삭제한다'는 수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단순히 명사에 그친 것이 아니라 동사, 형용사 등 그 폭은 다양하다. 예컨대, 체제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나쁘다', '반대한다'라는 동사가 필요한데, 이런 단어들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다. 대신 '안 좋다', '안 찬성한다'라는 식으로 그 의미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그 의미가 이전에 비해 다소 축소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대중들이 사용하는 언어마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대로 바꾸는 그런 사회 속에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 수도 있다. 윈스턴의 말처럼 의식해야만 체제는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오세아니아는 언제나 그 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것일테다. 윈스턴은 그런 세상 속에서 혁명을 꿈꿔본 한 사람 이였지만, 그의 꿈은 101호실로 대표되는 당의 폭력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절대로 이야기 하지 않겠다던, 윈스턴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도덕적 고결성을 표현하는 줄리아마저 포기하게 된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나와 한 가게에서 '우거진 밤나무 아래, 나 그대를 팔고 그대 나를 팔았네.'라며 쓸쓸하게 한 구절을 읊는다. 거대한 권력 앞에 무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래서 더욱 처연한 그의 마지막 한 구절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이 자유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일 테다.

 

1984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민음사

민음사에서 조지 오웰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 <1984>를 새롭게 펴냈다. <1984>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디스토피아 소설로, 날카로운 풍자와 정치적 함의로 유명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을 탁월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