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난리다. 한 쪽에서는 NLL을 포기했다며 이야기 하고 있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다며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이렇게 양쪽 모두가 서로의 이념만을 주장하며 싸워대는건 흔히 있는 일이였지만, 이번처럼 격렬하게, 그리고 양쪽 모두가 개싸움을 벌여대는 것은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 모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개개인만의 이념과 사상이 있기 때문에 NLL이든 국정원이든 어느 한쪽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이 믿는 진영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며, 때문에 이에 대해 이번 포스팅에서 가타부타 하지는 않겠다. 다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또는 다수의 의견을 아무런 과정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한 이들이다. 이 부분은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리뷰할때 다뤘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의 부정적인 모습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지난날의 예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2008년의 광우병 사태가 그것이다. 물론 꼭 수입할 필요도 없는, 또한 큰 위험은 없지만 장기적으로 위협 요인이 될 수도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30개월 이상, 그리고 특정위험물질(SRM)까지 수입하려는 것은 충분히 지적받고 시정 돼야 할 부분이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언급했듯이 당시의 광우병 논란은 필요 이상으로 확대되어 있었다. 또한 이는 실질적으로 30개월 이상 연령, 그리고 SRM 수입을 금지하기로 한 추가협상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당시의 시위는 폭력적으로, 그리고 반체제 성향을 띄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들은 '과연 그 당시 시위 현장에서 정부를 향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중단을 요청했던 사람들 중 광우병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는 일부의 사람들은 그저 다수의 의견을 따라서, 그리고 남들의 이야기를 쫓아 시위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확한 이성을 통한 판단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의 어리석은 행동은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현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우리의 역사이다.


당시 연예인 이경규는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었는데, 이러한 모습은 사실 우리 사회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이고,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서의 존경받던 수퇘지 메이저는 '두 다리로 걷는 놈은 전부 적이며 네다리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우리의 친구이다'라면서 동물을 제외한 모든 이는 적이라고 설파하고, 때문에 동물을 위한, 동물에 의한, 동물의 농장을 세우자고 이야기 한다. 돼지들 외에는 글자도 몰랐던 대다수의 동물들은 이러한 그의 주장에 공감하고, 끝내는 그가 사망한 뒤 농장에서 인간을 쫓아내는, '혁명'을 일으키고 만다.


동물농장은 단순한 반공소설인가?



농장 속 동물들이 이뤄낸 혁명은 인간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들은 인간으로 부터의 억압받던 자신들을 스스로 구원하고자 혁명을 일으키는데, 이는 지배층으로부터의 억압을 벗어나 피지배층의 사회를 만들자는 소련과 북한 등 대다수 사회주의 국가의 계급혁명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동물농장 이후에 나온 소설 1984의 모습 속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결국 조지오웰의 소실이라고 하면 사회주의 비판,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돌려본다면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있다고 이해되어지기 충분했다. 최근에야 교육 현장에서 동물농장이나 1984에 대해 듣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설령 듣는다고 해도 북한을 비판하는 소설이라고는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아마 군복무를 성실하게 마친 병사라면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정도는 그런 의미의 소설이라고 정훈교육 시간을 통해 들어본 바 있을 테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단순히 진영논리에 빠진 조지오웰이 그저 무작정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는 틀렸다. 그는 생전 열렬하게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사람 중 한명이니 말이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동물농장 책의 해제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조지오웰은 살아생전에 사회주의가로써 활동해왔고, 그의 펜 역시도 이를 위해 움직였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랬던 그가 동물농장과 1984와 같은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계기는 파시즘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그가 사회주의가로써 활동하게 된 이유는, 다시 말한다면 통일노동자당에 가입하여 활동한 이유는 단순히 그가 그들의 정치적 사상에 공감함으로써 이뤄진 것이 아니라 사실상 파시즘을 반대한다는 같은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은 독재적 전체주의에 대한 반발심에 따라 그러한 활동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역사를 살펴보면 결국 사회주의 역시도 전체주의로 흘러가고 말았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도 전체주의에 대한 극심한 반발심이 있었던 그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가능했던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소설을 단순히 반공소설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소설이 관통하고 있는 부분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이기 때문이다. 동물농장이나 1984 모두 마찬가지인데, 이는 단순히 사회주의국가 뿐만이 아니라 군부에 의한 독재체제도 마찬가지로 두 개의 소설이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동물농장은 단순한 반공소설이 아니라 전체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국내 정치상황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의 소설이 다른 의미보다는 반공 소설로써 대중들의 의식 속에 각인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소련을 향한 신랄한 비판



그러나 동물농장이 보여주고 있는 어두운 면의 실체가 소련의 모습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소설 동물농장의 대부분의 내용이 소련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소설속 등장인물은 크게 혁명을 일으키는 돼지들, 그리고 이를 뒤따르는 대다수의 피지배층 동물들로 이뤄지는데, 이 돼지들 중 중요인물은 크게 셋으로 메이저, 스노블, 그리고 나폴레옹을 꼽아볼 수 있다. 메이저는 동물농장에서 나이가 많은 연로한 돼지로, '인간이 없는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동물들에게 전달하며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며 죽는다. 이는 칼 마르크스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사회주의의 기틀을 모두 마련해놓고서 죽은 그의 일생과 유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노블과 나폴레옹은 사망한 메이저의 유지를 받드는, 즉 사회주의를 현실세계에서 실현해내는 역할로 이 둘은 대개 트로츠키와 스탈린으로 묘사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소설 속 스노블은 철저한 이상주의자로, 그리고 나폴레옹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또는 독재자)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 스노블이 트로츠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고, 나폴레옹이 스탈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소설에서 스노블과 나폴레옹의 권력다툼, 그리고 스노블이 전투 장면에서 앞장서 싸우는 장면은 당시에 국방장관으로 있던 트로츠키의 모습, 그리고 삼두체제 대 트로츠키로 불리는 제 1차 권력 투쟁의 모습과 굉장히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는 결국 조지오웰이 소련을 겨냥하여 이러한 비유를 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앞서서 그의 소설이 결국은 전체주의를 비판하고자 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언급했지만, 소설 동물농장이 소련을 직접적으로 겨냥, 그리고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나아가 새로운 독재체제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강력한 반발감이 있던 조지오웰은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동물농장에 그려낸다. 그리고 그의 모든 생각들이 점철된 단 하나의 문장을 소설 속에서 꼽자면, 소설의 말미에 등장했던,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다'가 될 것이다. 이는 '정의를 실현하겠다며 하위계층을 끌어들여 혁명을 일으킨 중간계층은 결국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해 단순히 그들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농장의 초기에는, 엄밀히 말하면 스노블이 남아있던 시기에는 분명 인간이 농장을 운영할 때보다는 동물들이 스스로 농장을 운영하던 때가 그들에게 있어서 보다 나은 시기였다. 하지만 스노블이 나폴레옹과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쫓겨난 후 농장의 상황은 급격하게 변화한다. 돼지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며 동물들을 통제하기 시작했으니, 오히려 그 옛날보다 더 심각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사실 모든 계급 혁명의 말로는 그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단지 어떤 체제를 선택하고 진행하느냐에 따라서 이러한 현상이 늦춰지는지, 또는 빨리지는 지에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한 사회에서 소비될 수 있는 재화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기인하고, 이러한 문제점은 '재화를 어떻게 분배해야 하느냐'라는 문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이에 대해 계급 혁명은 모두가 평등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힘들게 일하는 소수의 인원을 배려해주지 않는 모순을 가지고 있고, 소설 속에서는 일만 열심히 하다 결국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복서의 모습, 그리고 일은 하지 않은 채 배급은 나눠 갖는 여러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체제의 대다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는커녕 외려 체제를 무너뜨리고 만다. 자연의 원리는 적자생존이고, 인간도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삶 역시도 적자생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나 계급 혁명은 이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한다. 그러니 그 끝에는 그들 역시도 이와 같은 흐름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대다수의 문제는 '시스템'의 문제이지,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는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소설 동물농장이 이러한 주제까지로 확대하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아니나 소설의 내용을 통해서 그러한 내용을 충분히 유추해볼 수는 있다. 결국 '어떤 혁명이 일어나도 삶의 변화는 없다'라는 다소 허무한 결말로 까지도 전개가 될 수 있다. 자신들의 동물농장의 돼지가 되겠다며 나섰지만 마지막에는 인간을 흉내 내고, 인간과 함께하면서 어느 쪽이 돼지이고 인간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게 된 것처럼 말이다.


어리석은 혁명은 독재적 권위체제를 낳는다.



글의 서두에서 연예인 이경규가 방송에서 자주 다뤘던 말을 언급했었다. 바로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이는 소설 동물농장에서 잘 그려지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해서는 잘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금까지 글을 읽어 내려왔다면, 아마 다음과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동물농장은 1984와 마찬가지로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며, 또한 그 주체는 소련의 그것과 많이 유사하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은 메이저, 스노블, 마지막으로 나폴레옹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 '동물주의'라고 불리는 사상체계는 구성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 동물농장에서 인간을 축출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이뤄냄으로써 완벽하게 실현된다. 이는 그러한 사상을 만들어낸 메이저라는 사상가, 그리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 스노블과 나폴레옹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지만(물론 소설 속에서 나폴레옹의 혁명 당시 존재감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결국 이들이 실제로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동물농장 다수의 피지배층의 지지와 실질 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혁명이 그러하듯, 반란을 혁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간에 조력자가 필요하기 마련이고, 계급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조력자는 피지배층이 맡은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만약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이 혁명은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의 행동력은 동물주의라는 사상체계를 현실화 했지만, 그들은 사실 동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이해가 전무했다. 심지어 그들의 사상체계를 간략하게 요악한 칠계명조차 이해하지 못해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는 문장으로 간략하게 요약하여 이해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 가운데에도 이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 벤저민이라는 지식인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수의 동물들에게 이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체계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이유로 나폴레옹은 칠계명을 자신의 입맛대로 수정하기에 이르며, 소설의 끝에서는 칠계명의 단 한 문장이었던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마저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다!'(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고 바꾸기에 이른다. 만약 그들이 동물주의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혁명을 일으키던 순간에, 동물주의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봤다면 어떤 형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있었을테다. 물론 아무런 변화 없이 방관하고만 있던 벤저민에게도 그 잘못을 물을 수 있겠다. 그래서 일까, 소설의 끝에서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던 벤저민도 결국은 입을 열고, 칠계명이 사라져버리고 마지막 남은 한 개의 계명을 클로버에게 읽어준다. 그러나 이미 그 때의 순간은 인간이 자신들을 통제하던 그 때보다 오히려 더욱 살기 힘들어진 농장뿐이였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결국 어리석은 혁명은 독재적 권위체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을 통제하고 지휘할 수 있는 계층은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이며(그 권한을 위임받았건, 아니면 스스로가 그 권한을 자처하건 간에), 이른 계층에게는 다른 계층에 비해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지기 마련이다. 이는 그들이 얼마나 도덕적인 인물이냐에 따라 아주 나쁜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부분이고,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마냥 그들의 도덕심을 신뢰하기 보다는 다수의 대중이 그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의 행동을 비판, 또는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욕심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들이 다수를 억압하고 갈취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어떤 혁명이던 간에 그 혁명이 정상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감시와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우리들의 삶에 큰 변화는 있지 않겠지만, 최소한 누군가에 의해 지배받는 삶은 살아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이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은 단순한 반공소설이 아니라, 아마 바로 그러한 내용이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동물농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민음사

1945년에 간행된 조지 오웰의 대표작. 어떤 농장의 동물들이 늙은 돼지 메이저의 부추김에 빠져 농장주의 압제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인간의 착취가 없는 `모든 동물이 평등한 이상사회`를 건설한다. 그러나 돼지들이...